/김창주

전주문화재단 차장  

1950년대 전주에서는 『애정산맥』, 『아리랑』, 『피아골』, 『선화공주』 등 할리우드라고 불릴 만큼 많은 영화가 제작되었다.

1955년 6월 27일 전주도립극장에 입체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시설하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55년이면 벌써 60년도 전이다.

입체영화는 언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까?

그보다 먼저 짚고 가야 할 것이 입체영화가 들어오기도 전에 촬영이 먼저 된다.

1953년 7월 4일자 신문으로 가면, “미 파라마운트 영화회사에서는 한국문화를 널리 세계 우방에 소개하고저 방금 전선을 위시하여 서울 교외에서 『전우』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입체영화로 한국 소개에 기대가 큰 바 있다”고 전한다.

국내 개봉은 되지 않은 것 같다.

1954년 3월 7일로 가면 입체영화 『휴전』, “최근 영국에서는 입체영화 두 개가 공개 그 중 하나가 한국휴전을 취재한 것, 제작이나 촬영까지 전부 한국전장에서 한 것, 배역도 순전히 현역을 사용, 할리우드적(상업적) 영화로 기록영화가 되기에는 실패”라는 평을 전한다.

영화는 종전 전에 치열한 접전과 지루한 휴전 회담 등을 담고 있는데, 이 영상과 산모가 아이를 낳는 장면을 오버랩 시키고, 휴전이 성사되는 장면에서 산모가 평화라는 아이를 낳았다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참혹한 전쟁인데, 이렇게 표현한 것을 불쾌하게 내색하고 있다.

국내에 입체영화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55년 서울 수도극장이 『타이콘데로가의 요새』를 개봉하면서다.

본격적인 입체영화 기사와 과학적 원리가 도면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다.

영화 광고에는 입체영화를 보기 위해 한쪽은 붉고 한쪽은 초록색인 특수 안경을 쓴 관객들의 사진을 실어 놓기도 했다.

당시 영화 광고를 보면, “특히 입체영화의 관람은 화면에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물체와 인물의 놀라운 입체성에 대하여 사전에 충분한 조심성과 주의 하에 입장하셔야 합니다. 외국에서 상영시에는 어느 영화보다도 가족동반의 예가 많았습니다. 특히 여성관객들은 가족이나 또는 애인, 동료들과 같이 감상하는 것이 돌출하는 경이에 대한 여성들의 조심성”이라며, 운운하고 있다.

이것은 외화를 수입한 것이고, 국내 기술로 언제 처음 입체영화를 만들었을까? 1968년 7월 27일로 가면 “『한』이란 영화로 대종상 촬영상을 탄바 있는 장석준 씨는 680가지 촬영기 부속을 손으로 깎고 다듬어 입체촬영기를 만들어냈다. 4년에 걸쳐 이 촬영기를 완성했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입체영화 『임꺽정』을 시도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다시 “결함을 보완해서 거의 완전한 입체영화 『몽녀(꿈속에 여인이란 뜻)』를 촬영 완료했다”는 기사가 이어진다.

임권택 감독이 연출을 했고, 간첩이 등장하는 추리극이다.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1968년이면 48년이나 지났다.

앞에서 말한 1955년 전주도립극장에는 실재로 입체영화 시설이 되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기사를 찾을 없었다.

사실 그것보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년부터 덕진공원에서 입체영화를 볼 수 있다.

그것도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이 만들어진다.

정진권 총감독은 “덕진공원에 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대형 워터스크린을 설치해서, 퓨전 뮤지컬을 공연할 예정”이다.

뮤지컬 제목은 『실록을 탐하다』,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전주 사람들의 이야기다.

1955년 입체영화를 꿈꾼 전주의 꿈이 2017년 덕진공원에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전주시민으로서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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