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언론인 중앙라운지  

올해 벽두에 모두는 '붉은 원숭이해'의 희망을 얘기했다.

하지만 한 해의 반환점을 돌아 하반기로 치닫는 요즘 국내외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다지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워낙 큰일이 많아 6개월여 동안에 한해가 다 지나간 느낌이다.

뉴스의 중심은 유럽이었다.

몇 년간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로 비틀대던 유럽연합(EU)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이탈)로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를 집중적으로 겨냥한 테러와 아랍 난민 유입 문제가 맞물리면서 유럽연합의 출범 정신이기도 한 관용과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브렉시트는 민족주의를 불러내 보호무역과 신고립주의를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된 도널드 트럼프는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고,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다시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립주의'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남중국해에서 격랑을 일으켰고, 터키에서 발생한 쿠데타는 이슬람국가(IS) 발호와 함께 중동 정세가 혼미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 경제는 저유가와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성장 둔화 등으로 인한 연초의 금융 패닉에서는 벗어났지만, 위기와 불안은 상시화했다.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 선진국은 경쟁적으로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최근 몇 년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돈을 찍어냈다.

유동성의 홍수 속에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올랐으나 경제의 펀더멘털은 오히려 허약해졌다.

국내 상황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4ㆍ13 총선 민의는 여소야대를 만들면서 여권에 일대 각성을 촉구했으나 변화의 모습은 없다.

야권에서는 분배나 격차시정을 위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활발하지만, 국가 경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촉발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개성공단 폐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을 놓고 불거진 갈등과 대립은 통일은커녕 내부 통합이 더 시급함을 보여준다.

꼬리를 문 아동학대, 구의역 열차사고, 현직 검사장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부른 악취 진동하는 법조비리 등은 이 사회의 정의를 의심케 한다.

조로(早老)에 직면한 경제를 추스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제시됐으나 '이거다'하는 방책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과 해운 부실이 불거지면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주체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

정부는 각종 대책을 내놓고 추경을 편성하는 등 관성으로 움직이고 있으나 성장력 제고에 대한 자신이 없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경제계는 대내외 불투명성을 이유로 투자와 고용을 꺼리고 있다.

소비자들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나라 안팎을 둘러볼 때 역사가 상투를 치고 내리막길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후퇴의 징후는 도처에서 목도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미국식 금융 자본주의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면서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물론 낙관론은 여전하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팅 등을 위시한 4차 산업혁명은 과거에 그랬듯 인류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아직 세상이 평평하지 않기 때문에 후진국이나 신흥국의 분발로 세계 경제의 견조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특히 인구 대국인 중국이나 인도가 성장 여력이 있기에 경제 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생산능력은 비약적으로 증대했으나 저출산ㆍ고령화와 복지비용 증가로 기력이 떨어진 선진국들은 이를 받아줄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정보기술의 눈부신 발달이 세계인의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네트워크 혁명으로 세계와 세계인은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지만, 오히려 불만과 갈등은 커지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의 예언대로 생산성과 효율의 극대화만을 추구했던 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IT 혁명에 기반을 둔 '협력적 공유사회'라는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도, 대한민국도 역사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런 거대한 변화의 도정에서 우리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담대한 비전과 비상한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도 사회도 불신과 집단 이기주의로 역동성과 응집력을 상실했다.

내년 대선이 이 모든 모순을 용광로처럼 녹여 새로운 국가 건설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이럴 때 중요한 건 회의와 절망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이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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