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숙  

/언론인

# A 씨는 지은 지 3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에 살고 있다.

시세는 약 10억 원. 노후에 대비해 평수를 줄이고,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아파트로 이사 가려다 포기했다.

부동산 중개보수,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이사비 등 거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개보수만도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를 파는 데 900만 원(요율 0.9%)이고, 비슷한 가격의 아파트를 사면 또 900만 원, 도합 1천800만 원을 내야 한다.

# B 씨는 전세가 4억 원 아파트를 임대하고 있다.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 부분 월세로 전환하려 했지만, 임차인이 거부했다.

새 임차인을 찾으려다 단념했다.

월세를 내겠다는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웠고, 전세가를 5억 원으로 올려 받으려면 중개보수료만 200만 원(요율 0.4%)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 1억 원을 더 받아 은행에 고스란히 넣어 놓더라도 1년 이자는 140만 원 정도다.

2년 계약 기간이 지켜진다면 280만 원 정도 이자가 나올 텐데 중간에 임차인이 나가겠다고 하면 그 이자도 못 챙긴다.

또 다시 집을 내놓아야 하고, 중개보수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 C 씨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8억 원짜리 단독주택 매물을 보고 집주인과 직접 매매 거래를 했다.

등기부 등본을 넘겨받아 근저당 설정 등의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중개보수 640만 원(요율 0.8%)을 줄일 수 있었다.

최근 검찰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는 변호사가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는 소위 '복덕방 변호사' 활동은 불법이라며 트러스트부동산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변호사가 차린 첫 번째 부동산 중개업체다.

수수료는 거래 금액과 상관없이 99만 원, 45만 원으로 정액제이다.

현행 중개보수와 비교하면 파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트러스트부동산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매물을 무료로 소개하고 부동산 거래에 필요한 법률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개보수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료를 받는다.

트러스트는 "중개행위를 하더라도 보수를 받지 않으면 공인중개사법의 규제대상이 아니다"라며 "법률사무에 대해서만 보수를 받을 뿐이니 공인중개사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트러스트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법률 검토를 거쳤다"며 법정에서 자신들의 서비스가 불법이 아님을 밝히겠다고 자신했다.

복덕방 변호사가 생긴 것은 '복비'라고 하는 높은 중개보수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 법률시장이 포화해 '변호사 수입 절벽'에 이르자 변호사들이 부동산 법률 서비스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복비'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복덕방비'를 줄인 것이라고도 한다.

공인중개사들은 '복비'라는 단어가 비하의 느낌을 풍긴다며 중개보수, 중개 수수료라는 말을 쓰도록 원한다.

옛날에는 복비를 두둑이 주면 새집에서 복을 받는다는 속설도 있었다.

그러나 복비를 듬뿍 안겨주기엔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랐다.

서울의 매매가 6억 원 이상 주택 비중은 2000년 2.1%에서 2013년 27%로 높아졌다.

3억 원을 초과한 전세 주택 역시 같은 기간 1%에서 30%로 상승했다.

매매가의 90% 이상을 웃도는 전셋값이 속출하면서 '미친 전세'라는 말이 생겨나고, 매매와 전세의 중개보수 사이에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중개 수수료는 오르는데 서비스는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중개업소의 서비스는 보통 중개 대상물과 실제 이용 상태 확인, 계약서 작성 지원 정도다.

허위 매물, 무자격자 영업 등으로 신뢰도가 낮다.

중개보수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해 중개보수 체계를 부분 손질했다.

매매가 6억~9억 원 미만 주택에 적용했던 중개보수 상한 요율을 0.9%에서 0.5%로, 임대차 3억~6억 원 미만 중개보수 상한 요율을 0.8%에서 0.4%로 낮췄다.

이 정도로 충분할까. 부동산 중개 시장은 연간 2조 원에 이른다.

아파트 거래 몇 건 만 하면 한 달 내내 뼈 빠지게 일하는 근로자들의 월급보다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너도나도 중개업에 뛰어들어 공인중개사 면허소지자가 36만 명을 넘는다.

그런데도 매년 1만 명 이상이 면허를 취득하고 있고, 공인중개사 시험 학원이나 수험서가 넘쳐난다.

중개 시장이 포화하면서 중개업 내부에서도 허위 매물과 정보, 소비자에게 원성을 사는 중개료 등으로 인해 위기의식이 적지 않다.

국토교통부는 복덕방 변호사 논란에도 작년의 보완을 이유로 중개료 논란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중개보수를 또 인하하면 중개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일부 과열 지역을 제외하고는 경기 침체로 인해 중개 수입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부동산 정보 제공 앱이 100개도 넘는다.

온라인 등을 통한 직접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실거래가, 공시지가, 지적도, 토지이용규제 등 관련 정보를 온라인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서비스의 내용과 질에 상관없이 거래 물건의 가격에 따라서 정해지는 중개보수를 합리화하지 않으면 중개업이 설 땅은 줄어들 것이다.

인위적으로 진입 장벽을 높이 치고 과도한 이익을 남기면 그 장벽을 허물려는 시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중개업 종사자의 평균 연령은 53세다.

퇴직 후 '인생 2모작'으로 중개업을 택하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중개 시장이 무너지면 2모작도 가능하지 않게 된다.

중개보수야말로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날마다 규제 혁파를 외치는 정부가 손 놓고 있으면 안 되는 민생개혁이다.

부동산 서비스는 단순 중개를 넘어 임대관리, 자산관리 등으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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