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초단따 지금은 유도가족 전주시유도회장 8년 역임 원로-전문-생활체육인 화합 재정적 안정 예산확보 기회 노력 선수 많이 줄어 '초등 희망자 없어' 사업 이익 30% 봉사-사회 환원

봉사맨으로 통한다. 본인의 수익 중 30%는 봉사활동에 쓰겠다는 일념 아래 살고 있다.

최근 통합 전북유도회 초대회장에 당선된 권순태(66) 회장의 이야기다.

40여년전 전기공사업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탈북자, 신체장애인, 불우학생 등을 위해 살아왔다.

전북유도회 초대회장에 도전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봉사활동을 통해 전북유도회가 발전하고 전북유도가 전국 최고의 유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게 권순태 회장의 바람이다.

신임 권순태 초대회장을 만나봤다.
/편집자주


△ 취임 소감은

전주시유도회장을 8년 역임했다.

일본교류도 하고 유도에 몰랐던 부분을 많이 배웠다.

전북엔 유도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

전북협회 회장이 되면 일본교류를 시작으로 장학금 전달, 육성학교 발굴 등 많은 것을 해보고 싶다.

유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마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는 시대다.

변하지 않으면 뒤쳐진다.

전북 유도계도 마찬가지다.

변화와 개력이 없다면 실패한 협회로 낙인 찍힐 것이다.

도전과 응전 속에 전북유도의 역사를 다시 쓰고자 출사표를 던졌다.


△ 선거과정은 어땠는가

상대는 용인대 유도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분이었다.

매년 후원기금을 지원해 전북유도회 경영을 잘 해왔다.

이번 경선에서 전문유도인을 상대로 단 한 표 차이로 이겼다.

화합과 편파를 멀리하고 전주시 유도회를 이끈 경험이 표를 받은 것 같다.

전직 회장이 전북유도회를 최우수모범단체로 만들었으니 그 뜻을 이어받아 열심히 뛰겠다.


△ 전주시 유도회장을 역임했다.

활발한 일본 교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에서 유도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외국 교류를 한 결과다.

이 시스템을 전북협회에 고스란히 옮길 것이다.

또 약 1,500만원의 기금을 확보했고, 조직안정과 활성화, 회원단합과 유도 꿈나무 육성 등을 이뤘다고 자부한다.


△ 유도의 매력은

내유외강, 부드러우면서 강한 정신이 유도다.

심신을 다지기 위한 운동으로 매우 적당하다.

예절로 시작해 예절로 끝나는 게 유도의 큰 매력이다.

상대를 제압하기 보다는 예절을 매우 중시하는 운동이다.

심지어 힘이 다소 부족해도 상대힘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타종목에 비해 유독 유도인이 참을성이 많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 어떤 협회를 이끌고 싶나

전주시회장을 오래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원로 유도인과 전문체육인, 생활체육인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

전문유도인 출신은 아니지만 전북유도 성장의 발판 마련에 힘쓰겠다.

또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합병이 아니라 화합이 우선이다.

전주시유도회도 초창기 화합이 되지 않았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내 개인적 생활을 가지기는 어렵지만 해보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재정적 안정도 빼놓을 수 없다.

교류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예산이 너무 부족하다.

전북유도회의 건실한 재정과 단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산이 확보되면 유도회 꿈나무를 위해 선진유도기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마련에 노력하겠다.


△ 유도를 오래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래 고향은 정읍 태인인데 전주로 이전하면서 건강을 찾고자 시작했다.

1968년 초단을 딴 이후 유도를 계속했다.

하면 할수록 매력이 있다.

지금도 일반성인 2~3명 정도는 거뜬히 이길 수 있다.

대회를 나가도 항상 첫 순서로 출전한다.

상대 첫 상대를 이겨야 우리편 기가 살기 때문이다.

현재 공인 6단이고 아들과 딸도 유도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이른바 유도가족인 셈이다.


△ 현재 전북유도의 상황은

10년 전만 해도 우수선수가 많았다.

현재는 많이 줄었다.

초등학교에서 선수를 찾아야 하는데 희망자가 없다.

힘들다는 선입견도 한 몫 했다.

하지만 국위선양에 유도가 큰 몫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다.

선수부족은 전북 뿐 아니라 전국이 슬럼프에 빠진 상황이다.

하루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 좌우명이 있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다.

오천원 월급을 받으며 공직생활도 했다.

생활이 힘들어 사업을 했다.

남들 잘 때 일어나고, 하루 2~3시간 정도 쉬면서 사업을 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하고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

보다 나은 생을 살기 위한 삶을 산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것이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 봉사맨으로 알려져 있다.

정읍 탈북자 36명이 원활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게 내 목표다.

수익 중 30%는 살림살이, 30%는 회사 재투자 그리고 나머지 30%는 봉사에 사용하고 있다.

정읍시 옹동면과 태인면에 명절이 되면 백미 100가마를 기부하고 정읍시장학재단에 장학금 1,000만원도 기부했다.

신체장애인을 위해 매년 10~15쌍씩 무료 결혼식도 진행해 제주와 중국으로 신혼여행도 보냈다.

40년 동안 사업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유도인의 정신을 잊은 적이 없다.

유도인의 정신을 지키며 모든 사업과 봉사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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