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로

/언론인 

오래된 민주주의의 금언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워낙 유명한 말이라 웬만한 사람은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일이 으레 그렇듯이 너무 잘 알려지면 말은 신선도가 떨어지고, 의미도 퇴색한다.

본래의 의미를 오해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가세하면 형편은 더 나빠진다.

심지어 말의 본래 취지를 왜곡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내는 사람들까지 있다.

'절대' 권력은 지금 시대에 없으니 "권력이 절대 부패하는 일도 없다"며 권력과 부패의 필연적 연관성을 부인하는 경우가 그렇다.

의도적 오독이며, 왜곡일 뿐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은 앞뒤 맥락을 함께 볼 때 의미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 영국의 자유주의 역사학자인 액턴 경은 이 말을 대주교에게 보낸 서한에 적어 놓았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핵심 논점이던 '교황 무오류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글이다.

그는 권력의 속성을 이렇게 언급했다.

"법률적 책임이 없는 곳은 역사적 책임으로 보충해야 한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위대한 인물들은 거의 언제나 악인이었다…."  

절대 권력이 절대 부패한다는 건 의심의 여지 없이 맞다.

하지만 시대는 21세기,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 시절이다.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이 말은 오해의 여지를 남긴다.

그래서 이제는 액턴 경의 문장에서 방점을 앞으로 옮길 필요가 생겼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고 끊어서 말하는 것이다.

권력이란 자본주의의 총아인 재산은 물론이고 사회적 지위, 법률로 부여받은 크고 작은 권한 등을 망라한다.

권력의 범위를 정치적 차원 정도로만 좁혀서 볼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우리는 요즘 검찰의 부정 비리, 변호사ㆍ판사의 전관비리와 여기에 얽힌 각종 의혹 등을 경악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 사건이 시작이고, 그 여파로 햇빛 아래로 나온 홍만표 변호사 사건이 연속 상영물이다.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는 개업 직후 '잘나가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더니 한해 수임료만 100억에 육박할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다.

전관비리가 작동하지 않았으면 이런 수익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검찰은 "로비는 실패했다"고 결론 내렸다.

홍 변호사가 수사책임자와 수시로 접촉했는데도 그렇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이 아니라면 일반 변호사로서는 이런 접촉 자체가 특권일 텐데 말이다.

현직 검사장으로는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구속된 진경준은 친구인 넥슨 창업주를 통해 주식을 공짜로 받아서 무려 130억 원을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묘하게 얽힌 것이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이다.

검찰고위직 시절에 1천300억 원대의 처가 부동산을 넥슨이 특혜 구입했다는 이야기인데, 법률적으로는 어쩔지 모르나 윤리적으로는 질타를 피할 길 없어 보인다.

진경준 검사장의 경우는 어처구니없는 행태까지 들려온다.

고급승용차를 달라거나, 해외여행경비를 먼저 요구했다는 사례 등이 그것인데 이건 '돈을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일'이라는 촌평까지 나올 지경이다.

검찰이 이렇게 된 데는 견제 없는 권력에 취한 탓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절대 권력'은 없는 시대라지만 우리 사회는 검찰이라는 영역에 일종의 예외적 권력지대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권력지대에서 부정비리가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액턴은 부패한 권력에 법률적 책임을 지우지 못할 경우 역사적 책임을 물어 이를 교정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지만, 우리가 그렇게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더욱이 검찰의 오작동은 인내만 하고 있기에는 현실적 폐해가 너무 크다.

만약 기존 제도로 이런 문제를 교정할 수 없다면, 법률을 바꿔서라도 변화를 꾀해야 한다.

폭언ㆍ폭행에 못 견뎌 자살하는 검사가 나오고 해당 상사는 해임되는 지경이 됐을 지경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변화를 향하는 기본 전제는 분명하다.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스스로 절제를 배우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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