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봉헌

/변호사

여름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지금, 싱그러운 녹음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생명들의 바다 한 가운데 푹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살인적인 무더위, 열흘 이상 계속되는 열대야, 누진제에 의한 전기요금 폭탄 등으로 못살겠다는 인간들의 아우성은 살아 있는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온갖 풀벌레 소리에 묻혀 버린다.

대자연이 너무 좋다.

하나의 미물에 불과한 인간은 그 넉넉한 품 안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진정한 삶의 깨달음은 자연 속에서만 얻게 된다.

자만심과 이기심, 탐욕을 줄이라는 가르침도,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며 제 몫을 다하라는 위안도 모두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이루어진다.

루소는 자서전에서 “내가 온갖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을 진정으로 되찾은 것은 오로지 사회적인 정념들과 그 정념들의 우울한 행렬을 모두 떨쳐버린 뒤였다.

모든 것의 원인은 맹렬한 바람이 세상을 뒤흔들지만 그 바람이 불지 않는 순간 잔잔함으로 되돌아오는 변덕스러운 날씨이다”라고 말했다.

루소는 사회적인 정념을 변덕스러운 날씨로 비유하면서 우리가 자연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우리로부터 빼앗는 존재로 규정했다.

사회적인 정념이란 사회적인 갈등과 대립 속에서 생겨나는 적대감과 증오, 분노 등인데 그것들이 우리들로부터 평정심과 이성을 빼앗아 삶을 황폐화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인간인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들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니체의 표현을 빌린다면 삶은 쾌락의 샘이고 자신만의 힘에 의지이다.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는 우리 삶의 원동력이다.

인간사회에서는 삶에의 의지는 돈, 명예, 사랑, 권력에의 의지이기도 하다.

이 모두가 다 소중하다.

우리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려 할 때 돈, 명예, 사랑, 권력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위 의지들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 집단과 집단 사이에 충돌할 때 그 사이에 적대감과 증오, 분노가 표출된다.

이러한 사회적인 정념들과 그 정념들의 우울한 행렬을 떨쳐버리고 자연을 진정으로 되찾는 길은 무엇인가? 여름이 지나고 계절이 겨울의 문턱에 다가가면 저 무성한 잎들도 한 잎 두 잎 떨어져 종국에는 나무들은 벌거숭이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애써 봄에 새싹을 틔우고 여름에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참고 견디며 생명의 에너지를 만든 저 무성한 잎들의 노고가 헛된 것은 아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도 그 노고의 대가이고, 그 사이 몰라보게 굵어진 나무의 줄기도 그 노고의 대가이고, 다음 해 지난 해보다 더 무성하게 잎들을 키워낼 튼튼한 뿌리도 그 노고의 대가이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거기까지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몫을 다하면 자신의 존재도 소멸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일, 참으로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자연을 보며 배우는 가장 큰 지혜가 아닐까? 또한, 그 깨달음이 사회적인 정념들과 그 정념들의 우울한 행렬을 떨쳐버리고 자연을 진정으로 되찾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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