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유난히 낯설었다.

여름이면 으레 덥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푹푹 찐 것을 넘어 가마솥처럼 끓었던 것 같다.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를 넘은 폭염 발생 일수가 20일을 훌쩍 넘긴 지 오래고, 8월 말인데도 한낮 기온이 36도를 넘는 날이 속출한다.

기상청 기록을 보면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1994년 이후 가장 무더운 여름이라고 한다.

1994년은 폭염 발생일수 29일로 광복 이후 가장 더웠던 해였다.

한여름 더위야 예삿일이라고 말하고 넘겨 버릴 정도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기상청이 기상'오보'청이 되고 말았다.

더위를 먹어 아예 예보가 아니라 희망 사항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폭염으로 가장 강력한 직격탄을 맞은 곳은 한국전력과 산업통상자원부다.

에어컨이 말썽이었는데, 올해는 며칠 동안만 아우성치다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소득이 있기는 했다.

40년도 지난 징벌적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시대변화와 환경변화를 따르지 못했다는 인식이 대세가 됐고, 급기야 정부가 처음으로 요금 누진제를 개편하는 작업에 들어갔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역대급 법조비리는 기온에 못지않게 체감 열기를 한껏 올려놓았다.

1년에 100억 원 가까운 수입을 올린 홍만표 변호사 사건을 시작으로 넥센 비상장 주식을 뇌물로 사들여 130억 원의 재산을 모은 진경준 검사장 사건이 불거졌다.

해임된 진 검사장은 김정주 넥센 회장을 매개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각종 의혹으로까지 연결됐다.

여기에 우 수석을 감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검찰 수사 의뢰와 감찰기밀 누출 의혹까지 더해졌다.

감찰관과 감찰대상이 모두 수사 대상이 되는 낯선 풍경이다.

거론된 인물 모두가 검찰에서 최고위층에 올랐던 인물들이니 이런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급기야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리는 고육책까지 꺼내 들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문제도 한몫 거들었다.

국방부는 7월 13일 사드 배치장소를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의 공군 방공기지인 성산포대로 최종 확정 발표했다.

한미연합군 사령관이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한 지 2년여 만이다.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반발은 예상된 일이었지만, 성주 주민들의 거부는 사전 시나리오에 없었다.

이후 사드는 다른 후보지를 찾아 성주군 이곳저곳을 떠돌다 골프장까지 가 있는 상태다.

  하계 올림픽은 어김없이 4년 만에 리우에서 열렸지만, 국내 정치ㆍ사회 환경이 너무 뜨겁게 달궈지다 보니 예전처럼 폭발적인 관심을 끌지는 못한 것 같다.

올림픽 기간에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2인자인 태영호 공사 가족이 귀순한 일이 공개됐으니 더 그랬나 싶다.

평양복귀를 앞두고 불안감 때문에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들어왔다고 알려진 태영호 일가의 귀순 건은 영국 정보기관인 MI6와 미국 CIA(중앙정보부)까지 합작해 한 편의 영화처럼 진행됐다고 한다.

통일부 당국자가 "북한 체제 내부 결속에 금이 가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논평할 정도의 파괴력을 보인 귀순이다.

이 당국자가 더 나은 삶을 찾는 '이민형 탈북'이라는 탈북 유형을 언급한 대목은 오히려 새롭고 낯설었다.

  보통 여름철을 하한기(夏閑期)라 하고 실제로 그래야 하는데, 올여름에는 이 단어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기록적인 폭염과 검찰 사상 처음이라는 검사장 해임, 민정수석과 특별감찰관 동시 수사, 사드 배치 진통, 북한 고위급 외교관 귀순까지 큰일이 연달았다.

경제는 여전히 좋지 않다.

문제가 발생했지만 정리되고 관리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일들을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나름대로 배경 정도는 지목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정치지형 역전, 안보환경 재편과 지역이기주의 같은 것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최초 특이점이 무엇인지라도 알아내야 처방이라도 낼 것 아닌가. 어떤 작가는 낯설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올여름은 유난히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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