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시대를 훔친 미술> 역사와 예술은 한 프레임 안에 있다.

굵직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이 차곡차곡 회화에 담겨 왔기에, 몇 장의 명화를 주의 깊게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가히 격동의 세계사를 짐작할 수 있다.

이진숙 <시대를 훔친 미술>(민음사)은 독자가 회화를 통해 세계사를 읽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되어 준다.

피렌체 르네상스와 프랑스혁명부터 양차 세계대전, 미국 대공황까지 그림으로 예술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세계사의 주요한 기점들을 회화로 설명해 낸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학당>(1510)에서는 화려한 피렌체 르네상스를,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쟁의 참화>(1815) 연작을 통해 나폴레옹 전쟁과 그 참상을 읽어낸다.

또한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2)에서는 프랑스혁명의 열기와 생명력을, 얼마 전 영화 <미스터 터너>(2014)로 재조명된 바 있는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1840)을 통해 무도한 악습 노예무역을,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의 <제4계급>(1901)에서는 차티스트운동으로부터 촉발된 전 지구적 노동운동의 본격화를,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1930)으로는 아메리칸드림의 붕괴와 대공황을 직관적이고도 흥미롭게 설명한다.

예술가가 장기를 지닌 장인이기 이전에 한 시대를 살았던 사회의 구성원이자 시대를 고찰했던 기록자임을 감안하면 예술가가 그린 초상화들 역시 역사를 다룬 중요한 증표임이 확실하다.

우생학과 인종론이 판치던 19세기 말, 전시 대상으로 전락했던 남아프리카 여인 ‘호텐토트의 비너스’ 세라 바트만의 초상화, 삼일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남편을 잃은 한국의 여인을 그려 낸 엘리자베스 키스의 <과부>, 광란의 1920년대 미국에서 정신적 빈곤을 끌어안은 채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고군분투하는 여성을 신즉물주의풍으로 묘사한 오토 딕스의 <저널리스트 실비아 폰 하르덴의 초상화>(1926)는 감상자로 하여금 시대적 과오와 연대적 책임을 통감하게 한다.

책은 지엽적인 미술 사조를 설명하거나 예술가들의 살아온 날들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회화사를 주도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유럽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지역까지 포괄해 다양한 역사적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예술을,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인류의 오래된 꿈을 확인하고 그 꿈을 이어 가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저자 이진숙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루카치의 소설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여행 중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에 크게 감명 받아 문학을 등지고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 미술사학부에서 말레비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유학 기간 러시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세계 각 국 미술작품을 보면서 각별한 감동을 받았고, 이를 다른 이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귀국 후 청담동 박여숙 화랑에서 5년간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생생한 미술 현장 경험을 쌓았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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