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고문서 등의 문화재 복원사업에 한지의 우수성이 입증되어 교황 요한 23세 박물관 지구본을 한지로 복원 중이라 한다.

한지는 질기고, 바람이 통하고, 오랜 세월을 견딘다며 이탈리아에서는 문화재 복원사업을 한지로 시작하면서 8,000년을 보관할 수 있다고 자체 검증을 하였다고 한다.

흑석골의 한지 전성기에 100만불 수출탑을 달성하고 100여가구 이상이 한지를 생산하면서 자녀 교육과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었던 한지 생산단지였던 것은 수질이 적합하고 원료 구입에 적정한 위치에 있으며, 100만불 수출탑을 달성한 제지공들이 생존한 지금이 전통한지 원형을 복원하여 생산할 수 있는 적기이다.

그래서 흑석골에 한지 생산단지와 체험장, 한지박물관등의과 역사문화 스토리텔링을 살려 조성한다면 세계적 명소가 될 것이다.

남부시장 전주교를 건너면 전주 3대 바람통 초록바위를 만나면 이곳이 천주교 순교지이며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를 처형 된 곳이다.

전주천을 흐르는 물속에 비친 바위가 초록빛을 띠어 초록바위라 하였는데 도로 확장을 인하여 초록빛은 간 곳이 없다.

오랜 세월 사람들이 거주한 흑석골은 원형을 유지한 샘 3곳과 흑석굴이 있으며, 부녀자들이 마을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며 좀도리 쌀을 모아 100여년 이상을 지내온 당산제와 용왕제, 마을에 들어서면 수령 4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흑석골을 지키며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묵향에 취하고 한지에 난을 치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미술학도가 세계적 수묵화의 거장으로 태어난 남천 송수남 화백의 고향이며 유택과 기념관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명나라 이여송 장군 휘하 두사청 장군은 풍수지리와 자연경관에 감탄하고 춤을 추자 타고 온 말도, 하늘도, 땅도, 나무도 춤을 추었다는 두무소는 문헌의 기록에만 있을 뿐이다, 이제라도 복원하여 옛 정취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수풀이 우거지고 생활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어린이들이 미역을 감고 놀던 물놀이 놀이터 매봉소와 용소암, 넘어 올 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지게에 나무를 짊고 힘겹게 넘고, 지게에 쌀 주머니와 생선 한 마리 달고, 막걸리 한잔에 흥을 돋우며 가족들과 밥해먹을 즐거운 마음에 고단함도 잊고 넘던 보광제 고개가 지금은 전주시민들의 힐링 고개로 변했다.

보광재 고개에서 왼쪽으로 가며 남고산성이며 정몽주 우국시비,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에서 맑은 바람과 벗하고 남고사에서 목을 축이며 해질녁 남고모종을 즐기며 관성묘, 충경공 이정란장군의 사당에서 나라를 지킨 충정을 생각한다.

반곡서원을 들러서 학문에 취해보고, 풍수지리상 학의 형상인 전주교육대학교에서 학 춤을 추어보고 무형유산의 전당과 한벽당으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한지는 사용자가 제한되어 있으며 생산 단가가 높아 국내 생산보다는 중국 등의 저 임금 국가에서 생산하여 수입한 엉뚱한 한지를 서예인, 한지 공예인들은 알면서도 한지 아닌 한지를 한지라 하며 사용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제는 현실에 맞고, 사용자의 용도에 맞게 한지를 생산하여 사용자들의 저변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흑석골의 한지는 주변에 산재한 역사문화 콘텐츠와 연계된 자원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그런데 1990년대 아파트문화와 환경문제로 인한 한지산업이 쇠퇴한 전철을 밟지 않은 노력이 현실적으로 절대 필요하다.

생산한 한지를 소비할 사용자의 법적인 장치가 되어야 한다, 전통한지를 행정관청에서 시민 및 학생들에게 수여하는 각종 상장, 졸업장, 위촉장 등을 한지로 사용 할 수 있도록 조례로 정하여 한지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서예인, 한지공예가, 화가등 사용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한지가 되어야 한다.

/글로벌문화협회장 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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