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로 중앙라운지 언론인  

'논란이 있는 사안은 손대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의 책임회피가 만성화된 상태를 한 줄로 요약하는 말이다.

특별히 우리나라 경제 관련 부처 관리들에게는 '변양호 신드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보신이 최우선 덕목이라는 말과도 같다.

2003년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일을 주도했던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변양호는 나중에 검찰 조사와 재판을 받고 4년여 만에 무죄로 짐을 벗었다.

그 이후 변양호가 펴낸 책이 '변양호 신드롬'이다.

국가 경제에 사활이 걸린 일을 줏대 있게 처리하는 바람에 장시간 시달림을 받았다는 하소연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법적으로는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경제계 밖에서 그가 정말로 억울하다고 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투기자본에 은행을 헐값에 팔아넘겼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수상쩍게 금융기관의 대규모 투자를 받아 펀드를 조성했다'는 비판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경제관료의 보신주의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여러 가지 경제 난제를 풀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라면 사실 이걸 풀어낼 뾰족한 방법은 없다.

공무원의 자세를 단숨에 바꿀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궁금증은 남는다.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논란이 있는 사안이 경제부문에만 국한되지 않을 텐데 이쪽에서만 유독 볼멘소리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다.

경제관료나 경제전문가들이 유독 애국심이 부족한 탓은 아닐 테고, 경제 관련 정책 결정에 언제나 거대한 돈이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경제 이론이나 사상이 국적이 없으며 지구 보편적 성격을 갖는다는 태생적 문제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든 경제이론가와 사상가, 정책전문가가 같지는 않다.

역사는 이를 실증한다.

독일의 경제사상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리스트(1798~1846). 우리에게는 한물간 보호무역주의의 원조쯤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사실 그는 최종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완전 자유무역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리스트는 공업을 일으키는 일이야말로 핵심이며, 후발 국가는 산업이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보호무역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리스트=보호무역 원조'라는 선입견으로 국가전체주의자라고 오해받기 쉽지만, 거꾸로 그는 "공업의 진정한 발흥과 국가의 파워는 (영국처럼) 자유의 기초가 다져진 이후 시작된다"고 굳게 믿었다.

리스트 사상의 기반은 내셔널리즘이지만, 궁극적 이상은 지구 차원의 자유교역이었다.

보호주의란 그에게 자유교역이 가능케 하는 사다리에 해당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먼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간 국가는 '사다리 걷어차기'로 후발 공업국가의 도약을 막으려 한다.

일종의 경제적 민족주의로 불릴 수도 있는 생각이지만 리스트는 정작 독일인들로부터 평생 박대를 받으며 투옥, 해외추방 등 온갖 박해를 받았다.

심지어 머나먼 미국 땅으로 쫓겨가 작은 농장을 하려다 실패하기까지 했다.

그 당시 독일 정계와 주류 경제계를 사로잡은 생각은 애덤 스미스의 자유교역주의였기 때문이다.

리스트는 민족주의자로 추앙받기는커녕, 불온한 혁명가로 낙인만 찍혔다.

리스트는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대작 '정치경제학의 국가적 시스템'을 완성했고 말년에는 드디어 독일 내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신을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던 뷔르템베르크 군주와 알현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뷔르템베르크 군주는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친애하는 리스트, 본인은 나쁜 의도는 없었소. 과거에 우리가 지금처럼 서로를 알지 못했다는 건 유감스런 일이오." 이 말이 유일한 보상이었다.

그리고 리스트는 평생에 걸친 고난으로 건강을 크게 해쳤으나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정신착란까지 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는 죽음 이후에야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을 제대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성장이론은 상당 부분 조국 독일에 의해 정책으로 옮겨졌다.

세상을 뜬 지 150년도 더 지난 리스트의 고단했던 삶을 돌이켜 본 까닭은 두말할 것도 없이 현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변양호 신드롬'이란 말을 여기에다 견줄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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