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왕훈  

착하고 인정 많기로 소문난 A씨가 어느 날 길에서 부모를 잃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치자.

아이를 근처 파출소까지 데려다주는 것만으로도 칭송받을 일이지만 이타심이 지극한 A 씨는 아이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 정성껏 돌보는 한편 자신의 생업을 제쳐놓고 아이 부모를 찾아 나서기까지 했다.

모범시민으로 손색이 없는 A 씨에게는 어떤 권리와 의무가 생기는 것일까.   법적으로 A씨가 한 행동은 사무관리에 해당한다.

사무관리란 '법률상 의무 없이 타인을 위해 사무를 관리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무관리를 일단 시작하면 여러 의무가 발생하지만, 권리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위의 사례에서 A 씨는 부모를 찾을 때까지 아이를 돌봐야 할 의무가 생긴다.

형편이 안 된다고 해서 중도에 아이를 처음 발견했던 길거리에 놔두고 돌아온다면 그로 인해 초래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A 씨 몫이 된다.

A 씨는 아이를 돌본 대가를 요구할 수도 없다.

음식을 해먹인다든지 해서 비용이 들어갔다면 실제 쓴 돈만큼만 부모에게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듯 좋은 뜻으로 남의 일을 처리해 주었다고 해도 의무만 있을 뿐 별다른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데에는 제 일은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며 타인이 끼어드는 것은 불법이라는 근대 민법 체계의 정신이 반영돼 있다.

남의 일에 간섭해도 일정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불법으로 보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 민법의 사무관리에 관한 규정(제734~740조) 자체가 예외이고 특혜인 셈이다.

이 때문에 법을 아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남의 일에 간여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험한 세상에는 남의 일에 끼어들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무관리 규정의 이러한 취지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얼마 전에 택시 기사가 운행 중 심장마비로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진 사건이 보도됐다.

당시 택시에는 승객 두 명이 타고 있었으나 어떤 구호조치도 하지 않고 119 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나 논란이 됐다.

도덕적으로 손가락질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 승객들에게는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울 수 없다.

그들에게 위험에 빠진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승객들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섣불리 응급 구호조치에 나섰다가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방관하는 것이 신상에는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형법에도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법익이 부당하게 침해받고 있을 때 부득이하게 가해행위를 하게 된 경우 불법행위 책임을 묻지 않는 '정당방위' 규정이 있다.

그러나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위급한 상황에 놓인 타인을 도우려다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래저래 정의감을 앞세워 남의 일에 간여하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큰 구조로 돼 있는 현재의 법체계는 무관심하고 냉담한 사회 분위기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입법이 논의되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이 발의한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법'이다.

이 법안은 '재난 또는 범죄로 발생한 상해·질병 또는 장애로 인하여 구조가 필요한 자를 구조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구조하지 아니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위험에 처한 타인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가 도덕의 영역에 속하는지, 아니면 법의 영역에 속하는지는 또 다른 논란거리다.

흔히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한다.

특히나 위반 시 형벌을 부과하게 되는 형법상 작위의무의 요건은 더욱 엄격해야 할 것이다.

노상강도를 당해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119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 '도리'라고 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도덕적 의무인지 법적 의무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의무 위반을 근거로 형사 책임을 묻기까지 하는 것은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잠든 이웃들을 화마로부터 구하고 정작 자신은 불길과 연기를 피하지 못해 숨진 '초인종 의인' 안치범(28) 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겼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의로운 희생을 기리는 방법으로 의사자 지정 제도가 마련됐지만, 막상 의사자로 지정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여당 대표까지 나서서 "안씨가 의사자로 지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은 의사자로 인정받기가 그만큼 어려움을 방증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숨진 기간제 교사 김초원·이지혜 씨의 사례에서 보듯 순직을 인정받는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선한 사마리아인법'의 지지자들은 "법적 의무를 부과해서라도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만능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사회적 연대의 강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논란이 많은 입법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접근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의사자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하나의 예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사람에 대한 예우와 사회적 보상을 더욱 강화하고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관료적 절차로 인해 유족들이 피로와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선행을 유도하는 데는 '채찍'보다는 '당근'이 효과적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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