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왕훈 언론인

어느 날 아침 버스 두 대가 충돌해 여러 명이 교통사고로 다쳤다고 가정해 보자.

같은 시내버스에 타고 있다 부상한 세 사람 가운데 공무원인 A씨와 회사원 B씨는 출근하는 길이었고 또 다른 회사원 C씨는 출장 중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이들 세 사람이 타고 있던 버스와 충돌한 것은 어느 회사의 통근버스였고 이 통근버스로 출근하던 회사 직원 D씨도 충돌사고로 부상했다.

이들 네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보상을 받게 될까.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통상의 경우 공무원 A씨는 공무상 부상으로 인정받아 공무원연금법에 의한 보상을 받게 된다.

여기에는 치료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장해연금, 사망했을 경우 사망조위금 등이 포함된다.

출장 중이던 회사원 C씨와 통근버스로 출근 중이던 D씨는 산업재해보상법에 의한 업무상 재해 처리 규정에 따라 비슷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B씨는 같은 회사원이지만 달리 보상을 청구할 곳이 없고 일반적인 교통사고 처리 절차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공무원이 아닌 일반 근로자의 출퇴근 중 교통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산업재해보상법 규정 때문이다.

이 법 제37조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출퇴근 사고의 유형으로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만을 언급하고 있다.

반대해석하면 '사업주가 제공하지 않은 교통수단'으로 출퇴근하던 중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가 아닌 것이다.

반면에 공무원연금법과 시행령은 공무원이 출퇴근 중 교통사고를 당했을 경우 공무상 사고로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누가 제공한 교통수단인지를 따지지도 않는다.

공무원 아닌 일반 근로자라 할지라도 출장 중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것은 법에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판례로 확립돼 있다.

출퇴근에 따르는 위험이 사용자가 제공한 교통편인지 아닌지에 따라, 또 근로자가 출장 중인지 아닌지, 혹은 일반 회사원인지 공무원인지에 따라 다를 리 없다.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근로자라고 해서 신체와 생명이 덜 소중한 것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반 근로자의 출퇴근 중 사고를 달리 취급하는 차별적 규정에 대해 불만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출퇴근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이 끊이지 않았으나 법원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현행 법조문을 문자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렇게 말썽이 많았던 산업재해보상법 37조에 대해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지난달 30일 이 조항에 대해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도보나 자신 소유의 교통수단 또는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산재보험 가입 근로자는 사업주가 제공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산재보험 가입 근로자와 같은 근로자인데도 출퇴근 중에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차별 취급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사업장의 규모나 재정여건의 부족 또는 사업주의 일방적 의사나 개인 사정 등으로 출퇴근용 차량을 제공받지 못한 근로자는 비록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더라도 출퇴근 재해에 대해 보상받을 수 없다는 차별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어느 모로 보나 당연한 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미 3년 전 비슷한 내용의 헌법소원에서 5대3으로 헌법불합치 의견이 우세했으나 불합치 결정에 필요한 6명에는 미치지 못해 헌재는 간발의 차이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정도면 같은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이 다시 제기됐을 때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상식에 입각하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 규정은 정부와 국회가 알아서 개정했어야 할 텐데 결국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문제를 방치한 것은 '직무 태만'이라는 지적을 들을 만하다.

헌법재판소는 산업재해보상법 37조에 대해 위헌으로 결정하면 일반 근로자의 출퇴근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아예 사라져 버린다는 점을 고려해 이 조항에 대해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한편 내년 말까지 이를 개정하도록 했다.

산업재해보상법은 재해를 당한 근로자들이 최소한의 생계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다.

여기에는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출퇴근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경우 보상금 재원을 마련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 산재보험금을 다소 인상하는 쪽이 스스로 출퇴근하는 근로자를 차별하는 것보다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헌재가 제시한 시한까지 기다릴 일이 아니라 더는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국회가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