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선한사마리아인법이 대중매체를 통해 가끔씩 나오고 있다.

선한사마리아인법은 응급사항에 처한 환자를 도울 목적으로 행한 응급처치 등이 본의 아니게 재산상의 피해를 입혔거나 사상(死傷)에 이르게 한 경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형사상의 책임을 감면해 주는 법률상 면책을 일컫는다.

타인이 응급사항이나 위험에 처한 것을 인지했을 때 본인이 크게 위험하지 않을 경우에는 타인을 위험으로부터 구조해 줄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선한사마리아인법을 적용하지 않고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제3자의 위험을 초래하지 않고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구조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5년 이하의 구금 및 50만 프랑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밖에 폴란드,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도 법으로 규정하여 처벌하고 있다.

선한사마리아인법은 신약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것으로 강도를 만나 길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당시 사회의 상류층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지만 유대인과 적대관계인 사마리아인이 구해주었다는 기록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8월 대전에서 승객 두 명을 태우고 운전 중이던 택시 기사 이모(63)씨가 갑자기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30m 앞에 정차된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당시 승객들은 공항버스 출발 시각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어떤 구호조치도 하지 않고 119 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이씨를 버려두고 짐을 챙겨 떠나 논란이 됐다.

이씨는 주변을 지나던 목격자 신고로 인근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졌다.

도덕적으로 지탄 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이 승객들에게는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울 수 없다.

그들에게 위험에 빠진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로 대전 시의회는 임시회를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법 제정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여 가결시켰다.

이 법의 제정이 필요한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환경이 더욱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타인의 어려운 처지를 도우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곤경에 빠지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많은 불신의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어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선뜻 곤경에 빠진 자들을 돕기가 어렵게 된다.

보이스피싱은 이제 일상화되어 지난 총선 때 여론조사를 진행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모르는 전화를 받았다가 불필요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불신 때문이다.

은행의 자동인출기 부스에서 타인의 지갑을 발견하거나 길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 발견하면 주인을 찾아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라고 권한다.

자칫 의도적으로 지갑을 떨어뜨려 놓고 지갑 안에 있던 자신의 돈이 분실되었다고 하는 사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길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여성을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 한다.

의도적으로 쓰러져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성추행범으로 신고한다는 협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응급조치가 필요한 사람에게 응급조치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이차적인 상해로 인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지난달 서울 마포구 다세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젊은 청년이 119에 신고한 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 잠든 이웃들을 깨워 대피시켜 다수의 생명을 구하고 정작 본인은 유독 가스에 질식해 사망한 사건이 있다.

또한 불길이 번져가는 버스 안에 버스 기사가 몸이 끼어 옴짝달싹을 못하는 그 순간 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가 구한 젊은 간호사도 있다.

터널 교통사고로 차에 갇혀있던 어린이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순식간에 뛰어 간 10여 명의 시민들도 있다.

아직 우리의 이웃에는 이러한 살신성인의 의인들이 있다.

굳이 선한사마리아인법이 아니라도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타인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이러한 신뢰의 사회는 필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가진 과제이다.

그러나 갈수록 사회 전체에 불신이 깊어가고 있다는 점이 심히 유감스러울 뿐이다.

그런 점에서 선행을 행하다가 생겨나는 과실에 대한 법률적 보호가 이루어진다면 선행을 위한 더욱 자발적인 행동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전주남부교회 목사 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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