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부령-보안' 이름따 1416년 10월 부안현으로 확정 1860년 최시형 방문 동학 인연 무장 봉기 1차 동학의 시작 주민 소통-군민 화합 최우선 30일 특별전시 시작으로 정명 600주년 기념행사 개최

2016년은 부안군이 ‘부안’이란 이름을 갖게 된 지 600년이 되는 해다.

조선초기인 1416년(태종 16년) 10월 ‘부안현’으로 이름이 지어진 이후 600년의 부안은 ‘굴곡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다사다난했다.

민족운동의 전범으로 남은 역사적 대사건이자 세계사적 사건인 동학농민운동과 우리나라 지도를 바꾼 새만금방조제 그리고 주민들의 정서를 바꿔놓은 방폐장사태까지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시간들이었다.

특히 지난 2003년 발생했던 방폐장사태 전후를 되짚어보지 않고서는 현재의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의식 등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역사회에 짙게 깔려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주민갈등 등의 주요 대립 구조들은 모두 방폐장사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폐장사태가 부안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라는 뜻은 아니다.

지난 600년 동안 켜켜이 쌓인 방대한 역사야 말로 부안군의 가장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부안군은 삼한시대 마한이었으며 마한 54개국 중 ‘지반국(支半國)’이라 했고 백제시대에는 ‘개화현’과 ‘흔량매현’의 두 현이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인 서기 757년(경덕원 16년)에 개화현을 ‘부령’이라 고쳐 부르고 흔량매현을 ‘희안’이라 고쳤다.

고려시대에는 ‘부령현’과 ‘보안현’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인 1414년(태종 14년) 부령과 보안의 두 고을 이름에서 앞·뒤 한 자씩 취해 ‘부안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부령·보안으로 나눴다 부안으로 합쳐지길 2~3번 반복하다 1416년(태종 16년) 10월 최종적으로 ‘부안현’으로 확정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부안의 600년 역사 속에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바로 동학농민운동과 새만금 사업, 방폐장 갈등 등이다.

부안과 동학의 인연은 1860년부터 확인되며 이듬해 7월 동학의 제2대 교주 최시형의 부안 방문으로 구체화됐다.

그때 최시형은 옹정리(현재 부안읍 옹중리)에 사는 김영조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부안에서 꽃이 피어 부안에서 결실을 보리라”라고 했고 장차 부안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땅이 될 것으로 예언했다.

이후 1894년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농민들의 불만이 쌓여 고부관아를 공격하는 것에서 정부관리가 부정한 관리를 처벌하는 대신 농민을 동학교도로 몰아 탄압한 것이 원인이 돼 무장(지금의 부안 백산)에서 봉기를 한 것이 1차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부안이 역사적으로 이상향의 땅이자 변혁을 위한 성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돼 오고 있다.

부안은 청정해역인 칠산바다를 품에 넓은 평야지대인 계화들녘을 등에 지고 있어 예부터 맛, 풍경, 이야기 등 세가지 즐거움이 있다 해 ‘변산삼락(邊山三樂)’이라 불렸으며 특히 ‘생거(生居) 부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거 부안’은 조선 영조시대 암행어사 박문수가 “어염시초(물고기·소금·땔나무)가 풍부해 부모를 봉양하기 좋으니 ‘생거 부안’이로다”라고 한 말에서 비롯됐으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부안은 세계 최고의 상감청자를 생산했던 곳으로 전남 강진과 함께 일찍부터 도예문화의 꽃을 피워온 고장이기도 하다.

새만금 사업은 만경강·동진강 하구의 갯벌을 개발해 최대한의 용지를 확보하고 종합 농수산업 시범단지를 조성하며 항만과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 장차 새만금 국제무역항의 건설 기반을 구축하는 등의 목적으로 시작됐다.

1991년부터 담수호, 양·배수장, 방조제, 용배수로, 배수갑로 등의 수용시설물을 건설했고 약 19년 8개월 만인 2010년 4월 27일 세계 최장의 33.9㎞의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됐다.

방조제 완공 이후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의 굴곡진 100㎞의 해안선이 비응도~고군산군도~변산반도 사이를 연결하는 직선 방조제로 바뀌게 돼 그 방조제 안쪽으로 새로이 4만100h의 용지가 생김으로써 그만큼 국토가 확장됐다.

이 면적으로 여의도의 약 140배에 이른다.

지난 2003년 발생한 방폐장사태는 당시 군수인 김종규 군수가 부안 위도면에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하자 수많은 주민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1년여 동안 투쟁을 벌인 사건을 말한다.

당시 주민과 경찰 460여명이 다쳤고 경찰차량과 승용차, 군청 별관이 불탔으며, 주민 45명이 구속되는 등 392명이 사법 처리됐다.

이와 함께 정책결정 과정에서 주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군수는 하루아침에 나락에 떨어졌고, 주민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초유의 사태마저 벌어졌다.

방폐장사태는 처음에는 고향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됐지만 일부 정치인과 단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기득권을 위해 나서면서 일파만파 커졌고 제2의 광주’사건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했다.

이후 지역사회는 방폐장 유치 찬반으로 나눠 대립했고, 사람 간 위아래가 없어지는 등 무질서한 정서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억지문화가 태동했으며 ‘목소리 큰사람이 장땡’이라는 웃지 못 할 진리까지 생겼다.

그러나 이 같은 비상식적인 사회가 수년간 지속되자 군민들은 여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 2014년 선거에서 김종규 군수를 또다시 선택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군민화합 및 지역발전을 이룩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김 군수를 선택한 것이다.

  김 군수는 이에 따라 취임후 주민과의 소통을 통한 군민화합 및 지역발전을 최우선 정책으로 펼치고 있으며, 부안 정명 600주년인 2016년을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원년으로 삼고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김종규 군수는 “부안의 무한한 관광자원에 600년의 전통과 역사, 문화를 덧입혀 새로운 천년의 도약과 비상을 통해 명품관광도시를 만들겠다”며 “부안 정명 600주년을 계기로 2023 세계잼버리대회 유치 성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부안과 새만금이 세계 속에 당당한 위상을 떨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부안의 문화·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지난 600년간의 부안의 문화·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전시회’와 ‘역사인물사상 부안정신을 찾다 인문학 학술대회’,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 학술대회’, ‘부안정명 600주년 기념행사’ 등이 그것.우선 특별전시회가 오는 30일까지 부안군청에서 개최된다.

이 전시회에서는 ‘부안 무형 문화재 발자취’와 ‘역사문화의 숨결’, ‘매창-바람에 꽃 피우다’, ‘생활이 문화다’, ‘부안에 살으리랏다’ 등의 주제로 도자기와 조각, 그림, 고지도, 부채, 생활품 등 1000여점이 전시된다.

또한 부안 정명 600주년 기념 인문학 학술대회가 27일 오후 2시에, 동학농민혁명 백산대회 학술대회는 28일 오후1시에, 부안 정명 600주년 기념식은 이날 오후 5시에 각각 부안군청에서 마련된다.

/부안=김태영기자 kty5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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