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부터 현재까지 '밀수품'이 패권 전쟁의 주역이 되는 과정 담아

사이먼하비 作 '밀수이야기'

밀수는 국어사전을 빌리자면 세관을 거치지 아니하고 몰래 물건을 사들여 오거나 내다 판다는 뜻이다.

불법이다.

밀수는 역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

권력을 바꾸기고, 문명을 전파하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통일 신라 흥덕왕 때 중국으로부터 차를 밀수해 들어온 김대렴과 고려 공민왕 시절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밀반입한 문익점이 있다.

문익점 선생이 아니었으면 한반도에서 털가죽을 가진 짐승들은 씨가 말랐을 것이다.

역사에서 보면 다른 나라가 갖고 있던 고유의 자원이나 기술까지 밀수의 대상이었다.

김대렴이나 문익점의 경우에도 자원에 대한 밀수였다고 할 수 있다.

차와 면화가 가진 잠재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밀수를 역사에 대입하면 놀랍도록 거대한 세계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사이먼 하비의 <밀수 이야기>(예문아카이브)는 밀수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시대의 흐름과 권력의 이동에 따라 합법과 불법을 오갔던 다양한 교역 금지품과 수많은 밀수꾼들을 죄다 불러내 이 은밀한 교역에 대해 스케일 큰 그림을 그려낸다.

저자인 사이먼 하비 교수는 ‘밀수의 낭만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을 하나의 역사로 서술하는 일은 가능한가?’, ‘밝음과 어두움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가?’라는 이율배반적 질문을 시작으로 이 방대한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은 15세기에서부터 21세기 현재까지의 7세기 밀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유럽 열강들의 제국화가 진행되던 15~16세기를 필두로 권력의 향방이 걸려 있던 밀수의 정치적, 경제적, 과학적, 문화적 역학관계가 오늘날에 이르는 세계 정치경제사에 어떤 나비 효과를 불러왔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대항해 시대의 실크, 향신료, 은에서부터 제국주의 시대의 금, 아편, 차, 고무를 거쳐 현대의 코카인, 헤로인과 아프리카의 피로 물든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여정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았다.

저자는 “밀수가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이 세계를 변화시켰고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무기와 마약류 밀수가 오늘날 국제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이미 과거에서부터 밀수품은 늘 같은 양상을 띠어왔다고 설명한다.

요즘에는 전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물품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얽히고설킨 정치적 이해관계와 양보할 수 없는 패권 전쟁의 주역이 되는 현장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밀수는 국가의 감시를 피해 몰래 자행한 배포 큰 밀수꾼들의 사적인 거래도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막강한 배후 세력 국가가 있었다.

저자는 밀수가 없었다면 문명의 확산도 없었고 지금의 세계화도 불가능했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밀수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연간 10조 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인류가 교역 행위를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세상 모든 곳을 비추고 있는 가장 어두운 거래, 밀수의 세계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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