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왕훈 중앙라운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억압된 환경 속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는 것이 노예다.

21세기 문명국가에 노예가 존재한다면 믿기 어렵겠지만, 그것이 엄연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19년간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하고 충북 청주의 한 농장 축사에서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려온 고모(47) 씨. 자신의 나이나 가족의 이름조차 알지 못할 정도의 지적장애를 지닌 고 씨는 악취가 진동하는 축사 옆 쪽방에서 혼자 숙식을 해결해가며 소똥을 치우는 고된 노동에다 농장주 부부의 시도 때도 없는 폭행까지 견뎌야 했다.

아들을 잃고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칠순 노모는 지척에 살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전직 도의원의 농장에서 노동을 강요당해온 60대 지적장애 남성은 농장주에게서 임금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기초연금과 논을 판 돈까지 뜯겼다.

20년간 타이어 수리점 내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면서 강제노역을 해온 40대 장애인 역시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인간제조기'라는 글자가 쓰인 몽둥이 등으로 폭행까지 당해야 했다.

이런 강제노역 사건은 올해 들어 드러난 것만 해도 일일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축사 노예', '농장 노예', '타이어 노예', '토마토 노예' 등 갖가지 이름의 사건들이 네티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적장애인 고모(47) 씨가 일했던 충북 청주시의 한 축사. 고 씨는 이곳에서 19년간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사건이 빈발하는 것은 강제노동과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시가 촘촘하지 못하고 처벌 의지가 미약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폭행, 협박, 감금 그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사용자에 대해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조항 위반자에게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2014년 전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염전 노예' 사건 관련 재판에서 20건 가운데 13건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실형이 선고된 것은 근로기준법의 강제근로 죄에 더해 상해 등 다른 중범죄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강제근로 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처벌의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위에서 지적한 사례에서 보듯이 강제근로는 장기에 걸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3년으로 규정된 임금채권의 시효도 강제근로에 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강제근로가 발각되면 10년이건 20년이건 밀린 임금을 전부 지급해야 한다면 사용주로서는 무임금 또는 터무니없는 저임금으로 강제근로를 시킬 유인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강제근로의 수단으로 악덕 사용주가 즐겨 사용하는 강제저축에 대한 제재 역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부 사용주는 근로자의 임금을 저축해 주겠다면서 자신이 저금을 관리함으로써 근로자가 강제근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굴레로 이용하는 한편 수사당국이 강제근로를 문제 삼을 때 임금을 지급했다는 근거로 제시하려고 한다.

그러다 기회를 봐서 착복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기준법은 강제저축은 이유를 묻지 않고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처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고작이다.

강제근로의 피해자가 대부분 지적장애인인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해 이들에 대한 특별한 보호조항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여성과 소년에 대해서는 여러 조항에 걸쳐 특별한 보호 규정을 두고 있으나 지적장애인을 위한 보호 규정은 특별한 것이 없다.

어쩌면 판단 능력이나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미성년자보다 떨어지는 지적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근로계약 시 후견인 동의 의무화 등 미성년자와 비슷한 수준의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강제근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시망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상시 근로자 5명 이상의 사업장에만 적용하지만, 강제근로가 이뤄지는 곳은 이 규모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보완이 요구된다.

필요하다면 근로감독관이 농장, 축사, 염전 등 강제근로 가능성이 큰 사업장을 수시로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지역사회가 강제근로를 감시하고 의심이 가는 사업장을 발견하면 신고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 역시 강제근로를 방지하는 유효한 장치가 될 수 있다.

제20대 국회 들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의 개정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고 여러 건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강제근로에 관한 대책은 "강제근로의 임금채권 기산일은 근로계약 종료 시점으로부터 3년으로 한다"는 요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이 개명천지에 반인도적이고 반문명적인 강제근로와 인권유린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근절대책을 마련하고 끈기있게 이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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