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최순실 국정농단을 계기로 화산처럼 폭발한 촛불 민심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지 관심이다.

국민의 하야 요구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 문제가 정국의 핫 이슈가 됐다.

주권자 대다수는 박 대통령을 국가의 대표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와대의 기류를 보면 박 대통령은 물러날 뜻이 없다.

헌정 중단을 피하고자 임기를 마치겠다는 입장이다.

민심에 올라탄 야권은 박 대통령의 퇴진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정은 극도의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특검 등 변수가 있긴 하지만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합법적 절차인 탄핵으로 가는 길 외엔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100만 촛불이 들고 일어난 이후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은 온통 대통령의 퇴진 문제에 집중돼 있다.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심의 뜻을 그것으로만 한정해선 곤란하다.

국민 의식과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국가시스템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순실 사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의 종합판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나라를 잘 보살피라고 대통령에게 5년간 권력을 위임했는데 엉뚱하게도 비선인 최순실이 그 권력을 휘둘렀다.

국가 예산을 주무르고, 장·차관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재벌로부터 엄청난 돈을 뜯고, 스포츠계와 명문 사학을 유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국민정신의 총화인 문화를 내세워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에서 사악하다.

최 씨 일당의 분탕질로 헌법질서가 무너지고 국정이 문란해졌으며, 국민의 혈세가 샜다.

이 사건에는 권력의 사유화와 부패, 인사 전횡, 정경유착, 입시부정 등 권력형 비리의 악폐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월호 사건에서 본 국정의 난맥, 진경준과 홍만표가 상징하는 법조계의 타락, 국방비리, 부실 덩어리인 대우조선해양의 복마전 경영 등은 모두 최순실 사건의 연장선에 있다.

국가가 얼마나 하찮은 인간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이 편안한 휴식을 취해야 할 주말에 광장으로 몰려나왔다는 건 현실 정치에 대한 탄핵이기도 하다.

4·13 총선에서 3당 체제를 만들며 국가와 민생을 생각하라고 경고했는데 정치권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최순실 모녀는 강력한 '국민 각성제'였다.

정치에 무관심한 학생들을 광장 민주주의로 이끌었다.

최 씨의 딸인 정유라 씨가 SNS에 올렸다는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한마디는 핵폭탄이었다.

금수저 아닌 학생들과 가진 것 없는 부모들의 뒤통수를 쳤다.

최 씨의 국정농단 보다 이 말 한마디가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게 아닐까.  여기에 정 씨의 승마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고 재벌이 35억 원을 지원하고, 명문 사학이 특혜입학의 문을 열어줬다는 의혹이 추가되면서 국민 분노는 가열됐다.

대통령을 배후에 둔 최 씨와 그 주변 군상의 활극은 우리가 오늘 실천해야 할 시대정신을 분명히 한다.

'능력'이 상속 재산이나 비리, 폭주한 권력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 사회. 교육의 기회가 공정하고,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는 사회. 배경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 재벌과 권력이 야합하지 않고 공권력이 개인의 사리사욕에 이용되지 않는 사회. 돈이 인격이 아닌 사회.  100만 촛불은 이런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간곡하게 외치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어느 젊은 부모는 말했다.

"아이들만은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도록 하고 싶습니다."  

이는 대통령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온갖 갈등이 내연하면서 정치와 경제, 사회가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

이를 풀어내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진단이 오래전에 나왔다.

투명하지 않은 권력의 작동,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 구조, 재벌·기득권 위주의 경제운용과 심화하는 빈부 격차, 교육과 기회의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전면적인 국가 재구축이 시급하다.

1987년 6·10 국민항쟁은 쿠데타 등 정변과 1인 장기집권이 없는 민주주의를 이 땅에 확립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는 30년의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이제 그 체제는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1월 12일의 100만 촛불의 함성 역시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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