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품위 '진짜 어른'이 대우받는 사회 두 노인의 삶을 통해 본 '꼰대'의 정의

최현숙 著 '할배의 탄생'

박근혜 게이트로 어지러운 이때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을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의 주축은 박사모,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이다.

이들을 보는 눈들은 차갑다.

사람들은 함부로 어버이라는 이름을, 엄마라는 이름을 들먹거리지 말라한다.

이들의 구성원은 주로 중년, 노년층이다.

지난 9월에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70대 노인이 지하철 보호석에 앉은 임산부를 폭행했다.

이 노인은 임산부인지 확인해야겠다며 임부복까지 들췄다.

이들은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즘 사람들에게 이젠 ‘나이’는 통하지 않는다.

나이 많다고 공경 받는 시대는 갔다.

나이에 걸 맞는 연륜과 품위 등이 느껴질 때 그때서야 어른으로서 인정해준다.

최현숙의 <할배의 탄생>(이매진)은 꼰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약자석에 갇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김용술(71세)은 1945년 해방 때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난다.

일제 강점기에 몰락한 집안은 군산과 속초 등을 떠돌며 가난하게 산다.

아버지는 ‘일본 종놈’을 만들지 않겠다고 학교를 안 보내지만, 김용술은 그 탓에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한다.

속초에 정착해 결혼하고 양복을 만들다가 군대에 끌려간다.

제대한 뒤 경기도 안성에서 택시를 몰다가 속초로 돌아와 양복점을 크게 벌인다.

기성복 시장이 커지자 양복점을 접고 섹스 비디오방을 차린다.

그 장사마저 아내에게 맡기고 서울에 와 채소 장사를 하지만 가진 돈 다 도둑맞고 떨이로 파는 ‘돼지호박 5500원어치’로 재기한다.

가정에 소홀해진 사이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외면한다.

속궁합 잘 맞는 강 여사를 만난 뒤 이혼하고 구두 수선을 하며 잘 지내지만, 오늘도 가족들하고 화해하고 자기보다 어려운 노인들을 돕는 노년을 꿈꾼다.

이영식(70세, 가명)은 1946년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난다.

여섯 살 무렵 실수로 양잿물을 마신 친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 큰집에 가서 더부살이한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서울에 와 다방 주방에서 일한다.

남자다워지려고 안 가도 되는 군대에 가지만 작은 키 때문에 무시받자 ‘월남전’에 자원한다.

죽음의 공포를 겪은 뒤 돌아와 오랫동안 방황하며 노숙 생활까지 한다.

목수 일로 자기 생계를 꾸리지만, 가정은 꾸리기가 두려워 평생 홀로 산다.

두 사람의 삶은 군대, 여자, 돈, 군대, 여자, 돈이다.

김용술은 군대는 남자라면 가볼 만한 재미있는 곳인데 인권이나 들먹이니 자살을 하고, 꾀 못 내고 요령 피울 줄 모르고 탈영한 놈들은 ‘병신’이라고 말한다.

이영식도 요즘 애들이 너무 약해 군대에서 사고가 많다고, 때리는 놈은 통솔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폭력을 두둔한다.

그런 두 사람은 화려한 성매매 경험을 자랑한다.

“안쓰럽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 그냥 돈 주고 사는 여자지.” “남자 홀리는 여자들이 있거든요. 이쁘게 놀아요. 돈을 반기는 거지 나를 반기는 게 아니지요.”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마누라’도 없고 ‘자식’도 없다.

두 사람 다 평생 쉬지 않고 일했지만 가난의 굴레를 못 벗어난다.

저자는 노인들에게 마음속 깊숙이 잠자고 있던 평생 처음 하는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어르신이든, 꼰대든, 할배든 그저 한 사람의 민낯만 있다.

완고한 얼굴로 절뚝이며 거리를 지나가는 나이든 사람들 사이에서 미래의 내가 다가오기에 더욱 서글퍼질지도 모르겠다.

1957년생으로 남원에서 태어난 저자는 결혼과 출산 뒤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 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이 됐다.

2000년부터 진보 정당 활동을 하며 여성위원장과 성정치위원장을 맡았고, 진보 정치의 교착 속에 2009년 요양 노동을 선택했다.

현재 주된 관심사는 중장년 여성들과 노인들이라고 한다.

지은 책으로는 <천당허고 지옥이 그리 칭하가 날라나?>,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가 있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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