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T.호프먼 '정복의 조건··· 파편화 군사전쟁-화약의 기술 '토너먼트 모델' 제시

중세시대 유럽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끄트머리에서 외침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처지였다.

비잔티움 제국은 천년 고도 콘스탄티노플을 1453년에 오스만 제국에 빼앗겼고, 에스파냐는 1492년에 이르러서야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가까스로 몰아낼 수 있었다.

15세기 말까지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 아닌 변방이었다.

그러던 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잡았다.

수백 년간 유럽을 앞서가고, 강력한 문명을 가졌음을 자부했고, 유럽인과 동일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중국인, 일본인, 중동의 오스만 인, 남아시아인은 왜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것일까.필립 T. 호프먼의 <정복의 조건>(책과함께)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의 섬들에 도착한 뒤 천연두와 홍역 같은 전염병이 발병해 토착민이 떼죽음을 당했고 이는 제국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요인은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면역력이 있었을 중국이나 일본, 남아시아의 침략자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더라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산업혁명은 어떠한가? 200여 년 전인 1800년만 해도 산업혁명은 영국에서나 겨우 진행되고 있었을 뿐 나머지 유럽 지역에는 산업혁명이 도달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유럽인은 당시 지표면의 35퍼센트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의 선박은 저 멀리 동남아시아까지 이르는 해상 교역로에서 이미 300년 동안이나 이익을 짜내고 있었다.

유럽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모든 대양에서 무장선을 거느리고 인간이 거주하는 모든 대륙에 해외 요새와 식민지를 건설했다.

유럽이 화약 기술을 발전시키고 계속 앞서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유라시아 대륙 가운데 유럽에서만 화약 기술의 발전에 필요한 특정한 조건, 즉 끊임없는 군사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나의 국가로서 외침을 막는 것에 집중했던 비유럽 국가들과 달리, 유럽의 각 국가들은 그리 크지 않은 교전국으로 조각난 채 서로 밀접해 있었다.

그리고 유럽의 통치자들은 재정적 이득, 영토 팽창, 신앙 수호, 승리의 영광 등의 상(賞)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군사 경쟁을 벌였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정치사의 결과로 파편화된 유럽은 중세 후기부터 끊임없는 군사 경쟁을 벌여왔다.

이는 화약 기술의 혁신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저자는 유럽 통치자들이 화약 기술을 발전시킨 이유와 나머지 비유럽 국가들이 궁극적으로는 뒤처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토너먼트 모델이라는 경제 모델을 제시한다.

유럽의 파편화와 군사 경쟁, 화약 기술의 혁신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하나라도 실제와 달랐다면, 또는 비유럽 국가들이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면 유럽이 아닌 다른 세력이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경제학 이론,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경제 모델과 결합하여 기존의 논증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새로운 이유를 제시하는 동시에, 유럽의 역사에 보는 참신한 시각을 제시한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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