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훈  

내년 1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한반도 정책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정책의 내용도 우려스럽지만,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한 채 북핵 문제 등 새로운 한반도 정책에 대한 결론을 낼 가능성이 큰 것 아니냐는 이유가 크다.

가뜩이나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한국 정부와 무슨 중요한 새로운 정책 방향을 협의하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물며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를 작금의 상황에서야 이는 물어볼 필요조차 있으랴 싶은 질문이 됐다.

일본과 대비되는 우리의 모습은 더욱 씁쓸하다.

일본은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방미를 추진했고, 세계 각국 정상 중 처음으로 1주일 뒤 두 사람의 회동은 이뤄졌다.

우리 처지는 어떤가. 그래도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같은 날(10일)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를 가졌다는 데 안도하고 자위하는 정도가 아닌가.     트럼프 당선인과 아베 총리가 첫 만남에서 알맹이 있는 얘기는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17일 뉴욕 맨해튼 트럼프 타워에서 이뤄진 90분간의 회동에서 두 사람이 상당한 라포(rapport.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뤄진 인간관계)를 형성했으리라는 점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긴밀한 인간적 유대관계 형성이 모든 정상회담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성과가 적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이 일본을 특별대우한 것인지, 모든 가능성에 사전 대비해 왔던 일본 외교의 치밀함에 찬사를 보낼 문제인지, 혹은 두 요인 모두 다 작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대선 후 일본과 한국의 외교적 대응이 대비돼 보이는 점은 사실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미국도 새 행정부 출범 뒤 그 이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 작업이 벌어진다.

북한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책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도 출범 직후 재검토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내년 상반기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고 주목되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 기간 우리와 트럼프 정부 간의 협의가 실질적 측면에서 '블랙아웃'될 우려가 크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당선인의 북한 정책에 대한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대선 기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미치광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하다가 갑자기 김정은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일관성 없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16년 전 저서에서는 북한에 대한 폭격 가능성도 시사했다.

어느 때보다 신정부 출범 초창기 한미 간 협의가 중요하다.

우리 외교당국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얼마 전 조태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을 단장으로 정부 고위 실무대표단이 방미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를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직 인수위 관계자들을 면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정치 드라마가 한국 정부를 마비시키고 있다"면서 박 대통령이 "소동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약해진 권력 때문에 미국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초기 외교정책 대응에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도 "세계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생길 변화에 준비하는 와중에 한국 청와대는 마비됐다"면서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에서 한국의 역할이 약해질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래저래 걱정이 크다.

당장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언제까지일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국정의 전 분야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외교안보 측면에서도 지금의 혼돈된 시국은 하루속히 정리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년 한반도 문제 논의 테이블에 정작 한국의 목소리가 반영될 가능성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만난 정부 부처의 한 공직자가 말했다.

"정국 상황이 어떻더라도 우리도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크게 걱정하지 마세요".

쉽사리 믿을 순 없지만, 이 말을 정말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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