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석  

박영수 특별검사는 특검에 임명된 날, "수사는 사실을 쫓고 그 사실에 법을 적용하는 것"이라며 "사실만을 바라보고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체의 사실관계에 대한 명백한 규명에 초점을 두되, 수사영역을 한정하거나 대상자의 지위고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정파적 이해관계 역시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 앞에 밝힌 '임명의 변'이다.

TV로 본 그의 모습에는 많은 세월이 묻어났다.

그가 대검 강력과장 때 처음 본 후 거의 20년 만이다.

혈기 넘치던 40대 검사는 60대 초로의 변호사가 됐다.

내가 기억하는 박 특검은 소위 '정치검사' 이미지와는 멀다.

날카로운 '칼잡이' 검사 분위기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우직하고 좀 직설적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타고난 뚝심의 강력부 검사였다.

강력과장이라는 보직이 그런 이미지 메이킹에 영향을 줬을 수는 물론 있다.

그간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는 대검 중수부장을 거쳐 고검장까지 오른 후 검찰을 떠났고 몇 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다.

세월의 '때'가 묻을 만도 한 이력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돌고 돌아서 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목전에 둔 상황까지 왔다.

그 사이 국민의 피로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촛불민심에 숨죽어 있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6일 자 한 조간신문에는 경북 경산의 '민심'이 실렸다.

팔순의 노인은 언론이 광화문 촛불민심만 말고 시골 늙은이의 민심도 전해달라고 했다.

대통령의 잘못은 알지만 물러나는 대통령에게 최소의 예우를 해 드리자고 했다.

이 시대 정치인들도 나라가 이 지경 되는데 일조했거나 방조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끔 연말 모임에서 만나는 지인들도 나에게 불만을 쏟아낸다.

고교 동문회에서 만난 한 친구는 언론이 경쟁적으로 의혹만 부풀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고 따졌다.

'김연아 선수가 박 대통령과 함께 한 행사에서 대통령의 손을 뿌리쳤다는 보도는 김 선수가 직접 부인하지 않았느냐',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녹음 파일을 들으면 촛불이 횃불이 될 것이라고 검찰 관계자가 얘기했다는 보도는 검찰이 공식 부인하지 않았느냐' 식으로 목청을 높였다.

그게 본질은 아니라는 정도로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친구는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는 말을 던졌다.

고향 친지의 결혼식에서도 70대 친척으로부터 박 대통령 관련 방송 보도에 관한 불만을 들었다.

아무래도 대구 출신이다 보니 박 대통령과 정서적 유대감이 깊은 사람을 상대적으로 많이 만나고 이런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깃털'의 때가 '몸통'의 때를 덮을 순 없다.

이 사건의 본질은 특정인 세력이 대통령의 방조와 비호 아래 국정농단을 한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하고 국민의 신임을 저버렸다는 사유 등으로 탄핵안이 발의됐고 검찰에 피의자로 입건됐다는 게 핵심이다.

앞으로 탄핵절차가 진행되면 진실공방이 다시 가열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탄핵안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담담하게 갈 각오"라며 탄핵 심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뜻을 밝혔다.

결국 특검 수사에 국민적 관심이 더 쏠릴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가 박 대통령 한 사람의 거취 문제를 결정짓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전대미문 국정 농단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밝힘으로써 우리 사회의 썩어빠지고 어두운 곳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국민은 알고 싶어한다.

진실 앞에서는 모두가 승복할 것이다.

  박 특검은 취임 일성에서 사실만 보고 가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법치가 무너지고 국격이 땅에 떨어진 지금 국민의 마음은 만신창이다.

주말마다 수많은 시민이 촛불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치고 여전히 혼란스럽다.

박 특검은 국가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처음 약속을 지키면 된다.

역사가 '박영수'라는 이름 석 자를 어떻게 기록할지는 그가 초심(初心)을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그렇게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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