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문화재단 김창주 팀장  

닭띠 해 전주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역사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보았다.

2005년 4월 상산고등학교와 남양효자아파트 일대에 너구리 2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처음에는 두세 마리에 불과했는데, 10여 년 동안 주민과 학생들이 먹이를 주면서 그 수가 늘었고, 주민들 역시 길조로 여기고 있다는 기사다.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너구리가 아파트 근처에 산다니, 신기하다.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면, 전주가 그 만큼 품격을 갖춘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너구리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더 이상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잘 있을까? 갈 길이 멀다.

다음으로 넘어간다.

1993년에는 안타까운 기사가 많았다.

전주에 1,200년 된 고찰인 진북사가 부근의 아파트 공사 때문에 황폐화 되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모악산에 많은 등산객이 몰리면서 등산로가 황폐화가 되고 있어서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운동이 시급하다는 기사도 있다.

벌써 24년 전 일이지만, 문제제기로만 끝나지 않고 비교적 잘 복원,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장 슬픈 사건은 여객선 서해 훼리호가 위도 해상에서 침몰, 292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었다.

1981년에는 보존과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한옥마을의 효과적인 보존과 관리방안을 강구해서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기사가 있다.

또 노송동에 있던 전주역을 옮기면서 옛 역을 보존할지 말지 논란 끝에 현 전주시청이 이전하게 된다.

역시 많은 노력이 있어야 문화유산을 보존할 수 있다.

그 노력 끝에 오늘의 한옥마을이 전주의 자랑이 되었다.

모든 문화유산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을 견뎌냈다는 점이다.

시간을 견디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찾아 주거나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지금은 시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지만, 1969년에는 삼천동, 송천동, 평화동 등이 대부분 전기 혜택을 받지 못해 호롱불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에 전주시가 4,534개의 전기등 설치를 계획한다.

불과 48년 전이다.

반세기만에 호롱불이 첨단 IT의 불빛으로 바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보면 엄청난 산업의 발전이 느껴진다.

이게 다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하신 업적이다.

1957년으로 8월로 가면, 전주경찰서가 주간에 전주천에서 목욕을 금지한다.

적발되면 의법 조치하겠다고 주의를 주는 동시에 주간의 목욕은 각시바우 부근에서만 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그만큼 물이 깨끗했다.

11월에는 학생들과 원도심 조폭들과의 패싸움이 있었다.

그 유명한 ‘투구봉 사건’이다.

중절모를 멋지게 쓴 어르신들은 이것이 바로 전주판 영화 “친구”라고 말한다.

이 사건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창 영화화 논의가 있었지만, 이제는 잊혀져가고 있어 아쉽다.

다음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1945년이다.

한옥마을 토담집에서 해방 후 국내 첫 한글 신문인 “건국시보” 발간이 논의가 되어 8월 17일 발간이 된다.

전주의 언론인들이 “누가 종업원이고 경영주인지 구별조차 없이 해방된 감격”을 즉각 알리기 위해 발간한 신문이었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역사는 픽션”이라고 말한다.

역사가 허구라는 말이 아니라, 재구성된다는 의미다.

이렇게 사건을 나열해 보면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우연과 우연의 나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사건과 사건을 이어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 대표적인 교과과목이 서양인의 관점으로 만들어 낸 “세계사”다.

그들이 눈으로 보고 해석한 것을 세계사로 알고 배웠다.

21세기 전주는 전주인의 눈과 해석으로 역사를 쓰며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전주정신”, “전주시 마을조사사업”, “전주시미래유산 프로젝트”가 그 대표적인 예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