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명인 김상휘 박사      

풍수지리가 지향하는 근본적 철학은 인간은 현지 자연환경을 닮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새로운 관저에 들어갈 때면 주변 자연환경을 자세히 살폈고, 자신과 어우러지지 않는 어색함이 있으면 돌탑이나, 조경수로 비보(裨補)를 하고 입주했다.

 요즘 직장인들은 정년 후 제2의 삶을 펼치기 위해 귀농과 귀촌을 꿈꾸고 있다.

귀농·귀촌지 선택에도 생활풍수 참조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2017년도 벌써 며칠 지나버렸다.

 신년을 맞이한 온 국민들은 새로운 각오와 역동적인 한해가 되기를 기원하며, 지난주 토요일 촛불 민심은 1천만 명을 넘겨버렸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기름 값을 비롯 생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실업률 또한 사상최대로 치솟는 한해가 될 것으로 예견하는 뉴스가 나오자, 선술집 술꾼들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대통령 탄핵과 최순실 국정농단을 안주로 삼았다.

 급기야 선술집에 둘러앉은 사람 중 풍수지리를 일설 하는 사람이 청와대 흉지론을 들고 나섰다.

    청와대 흉지론은 지금으로부터 623년 전, 1394년 이성계가 경복궁을 창건 뒤 처참한‘왕자의 난’사건 후 비극적 궁궐로 출발됐다.

 하지만 이방원은 자신의 패륜을 변명하기위해 바위 많은 북악산을 두고 이유를 둘러댔다.

북악산은 바위가 험하고 명당수가 없어’(石山之險,明堂水絶)한 순간 불행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867년 중건할 때까지 270년 동안 폐허 방치된 채 1865년 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런 탓인지 건국 이후에 청와대에 들어갔던 역대 대통령들은 하야,시해,자식구속,본인구속 등으로 한결같이 좋지 않은 말년을 맞았다.

결론적으로 청와대 터는 흉지여서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풍수 호사가들은 청와대 흉지를 더 부각하기 위해 조선시대 궁궐 무수리들이 죽으면 장사를 지냈던 공동묘지였고, 북악산 살기노출과 압살기운 때문에 좋지 않은 터, 라고 했다.

 또한 북악산 흉한바위는 옥녀의 종기와 같아 이곳에 거처했던 후궁들은 왕자를 생산했음에도 쓸쓸히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사고무친 격 고독의 터였다.

 특히 여인들에겐 한을 안고 사는 터를 지적하고 길지보단 흉지로 내 몰며 청와대 사람들은 그 자연환경을 닮아가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전인수 맹목적 충성으로 자신의 인성까지 폐쇄적으로 변화시켰다.

고 했다.

 오죽했으면 신성한 청와대를 흉지로 내 몰고 있을까. 하지만 청와대 터에서 1990년 2월20일 대통령관저 신축공사 중 관저 뒤에서‘천하제일복지’라는 표석이 발견되었다.

 당시‘천하제일복지’를 목격한 풍수쟁이들은 청와대가 대한민국에서 최고길지라고 입을 모은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곳곳에서 상상치 못할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들춰지자, 국민들은 갈수록 치를 떨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죄와 벌이 온 국민이 납득될 수 있게 하루속히 마무리를 기대하며,‘풍수 터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최창조 교수 말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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