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봉헌 변호사

이어령 선생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삶이 혼란스럽다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세상은 언제나 변화로 흔들렸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은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최근의 개헌 논의를 지켜보면 이어령 선생의 이 말이 참으로 적절한 것 같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사태, 세계인에게 감동을 준 촛불시민혁명, 국회에서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가결, 늦어도 3월초로 예상되는 탄핵심판, 그에 따른 벚꽃 조기대선 등 현기증 나게, 숨 가쁘게 대형사건이 진행되거나 진행될 예정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혼란스러운데 생뚱맞게 개헌 타령이냐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말 과연 그럴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헌정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냈고 그 문제의 본질은 제왕적 대통령제다.

민주국가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대통령 권한과 미약한 국회권력 때문에 대통령 비서실이 내각 위에 군림하고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 있으며, 검찰, 경찰 및 금융기관 공기업 등 산하기관 인사를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 결과 비선실세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청와대라는 밀실에서 암약하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사실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1987년 헌법 개정이후 단임 대통령이 6명이 나와서 30년간 운영되는 동안 이런 현상은 되풀이 되었고 갈수록 악화되어 급기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국정농단, 헌정질서 파괴, 국기문란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모두 임기 시작 시점에는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았지만, 임기 말 가족과 측근의 구속 등으로 대통령은 사죄하였고, 낮은 지지율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따라서 이제는 이러한 현상을 운영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고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하여  근본적 수술을 단행하여야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대선 이전 개헌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도 희박하거니와 촛불시민혁명의 요구를 수렴하기보다는 권력구조에 관한 정파간의 타협을 매개로 한 정략적 개헌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히려 대선 이후 개헌론이 정략적이다.

과거에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고 여러번 개헌론이 수면위로 떠올랐지만 한번도 본격적인 추진이 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정치인, 심지어 내각제 합의까지 한 경우에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개헌을 반대했다.

임기 전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통령이 반대하는 일은 정치권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임기 후반에는 당선이 유력시되는 이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들이 또 개헌을 반대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대통령권한대행체제로 힘의 공백상태인 지금이 헌법개정의 적기이다.

이미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개헌에 적극 찬성하고 있어 개헌특위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

1987년 개헌안도 국회에 발의된지 40일만에  처리된 전례가 있다.

헌법은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 이를 공고하여야 하고,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 의결하여야 하며,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 제129조, 제130조) 공고기간 20일과 국민투표 준비기간을 감안하면 2월말에 개헌안을 발의하여 4월 초에 다 마칠 수 있다.

개헌의 방향도 대통령의 권한을 분리하여 대통령과 내각이 권한을 나누어 행사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국회의원 대다수가 사실상 합의한 상태이다.

 언제나 변화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을 것인가. 그렇지 못하고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불평불만만 할 것인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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