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그 뒤에 감춰진 이면을 들여다 보다

정하람 작가는 자아를 탐구한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정체성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사춘기 시절, 진로고민이 많은 청소년기, 또 직업을 결정해야 할 20대에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다. 그런 시간이 지나가고 팍팍한 삶에 놓여 있다 보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뒷전이 되고 만다. 작가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편집자주  

 

지난 2015년 4월 정하람 작가는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이후에는 전주를 떠나있었다. 휴식을 갖겠다는 생각으로 찾은 전주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기보다는 무엇인가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한 점, 한 점 작품이 완성됐고 이윽고 개인전까지 이어졌다.

영화배우들이 작품에 소재가 됐다.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게리 올드만, 헬렌 미렌, 히스 레저, 최민식, 다니엘 데이 루이스 등 소위 연기파 배우들이었다.

그러나 배우를 잘 알지 못한다면, 아니 잘 안다고 해도 ‘누구지’ 하는 물음표를 던질 수 있다. 배우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나타내는 선을 불분명하게, 번짐, 끊어짐, 중력이 없이 붕 떠 있는 느낌 등으로 표현해 한 눈에 누구인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작가가 나타내고자 한 것은 욕망의 괴리감이다. 불확실함의 표현 방식으로 이미지의 부정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우리가 보는 배우의 모습은 스크린 속 모습이다. 실제 자신의 모습이 아닌 남에게 어떻게 비춰져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직업이 바로 배우다.

“대중들은 배우가 실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잖아요. 스크린에서 배우가 연기한 모습을 보고 추측을 할 뿐이죠.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속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배우가 캐릭터로 녹아들어 욕망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욕망이다. 이 안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가 소재로 활용하는 배우들은 연기를 아주 잘하는 배우들이다.

첫 전시에서 받은 평은 나쁘지 않았다.

“전시장을 찾아 준 중견작가 선생님들에게 제 전시에 대해 깊이 있게 물어봤더니 상업적, 개념적 미술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격려도 해주셨죠. 상업적이라는 것은 아마도 배우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작가는 주로 배우들을 그리고 있지만 꼭 배우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대학시절에는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당시 완전한 나로서의 욕망이 없었어요. 내 욕망과 구성원들의 요구에 대한 괴리감이 느껴졌죠. 자화상을 통해 자아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풀어냈어요.”

뉴욕 레지던시 생활에서 느꼈던 뉴욕의 거리 풍경도 소재가 됐다.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뉴욕의 모습과 실제 자신이 생활하면서 느낀 뉴욕의 모습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뉴욕에 3개월간 머물렀는데 뉴욕의 대표 거리를 가보면 미국인들은 보이지 않고, 관광객들만 가득한 거예요. 아주 잠깐 머물고 흔적 없이 떠나는 모습들이 반복돼는 거죠. 무엇인가 완전해 보이지 않았어요.”

뉴욕 역시 이미지의 부정적 속성을 갖고 있었고, 소재가 됐다. 이처럼 작가에게는 굳이 배우가 아니어도 모든 개개인, 풍경, 사물 자체도 소재가 될 수 있다.

남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의식하며 옷차림, 행동, 언어까지 신경 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본래 자신의 모습인지 아니면 남을 위해 만드는 이미지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작가는 앞으로 젠더를 다루고 싶다고 했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이들이 어떤 혼란을 느끼고 있는지를 표현해 내고 싶어서다.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이들을 섭외하고, 인터뷰하는 과정이 녹록치는 않을 것 같아요. 아직 구상중이에요.”

작가의 젠더 작품을 만나기 전 관람객들은 배우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한 차례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숨갤러리에서 오는 5월 22일부터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프로필

상명대학교 조형예술학부 한국화전공

전북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과 재학

2015 정하람 개인전(교동아트)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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