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없는 가요의 선입견을 깬 반전 고전이든 가요든 취향-선호도 차이

조석창기자의 '한장의 음반'

노고지리 '찻잔'

음악에 대해 지독한 선입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고전음악이나 재즈 정도는 들어줘야 했다.

가요나 팝 등 대중음악을 들으면 품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지배할 때다.

이런 장르의 음악을 애써 멀리 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10여년 전 선입견을 깨는 일이 생겼다.

한창 음악을 들을 때, 전국 어디든 시청회가 열리면 찾곤 했다.

부산이든 서울이든 시청회가 열리면 만사를 제치고 찾았다.

전남 순천이었다.

아파트 가정집이었는데, 거실에 침실이 있고 안방이 리스닝룸이었다.

50대 부부였는데 남편의 오디오 생활을 위해 기꺼이 안방을 내 준 것이다.

안방에는 오디오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파란색 불빛이 트레이드 마크인 매킨토시 파워, 프리 앰프가 웅장하게 자리 잡았고 양쪽엔 거대한 몸매를 자랑하는 탄노이 스피커가 버티고 서 있다.

언뜻 봐도 수천 만원을 호가하는 시스템에 기가 죽어 숨소리조차 내쉬지 못했다.

주인장이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담배. 일행에게 담배를 일일이 나눠주며 불까지 붙여준다.

담배를 피면서 들어야 음악이 제대로 들린다는 철학 때문이다.

얼떨결에 담배를 피웠지만 남의 집 안방에서, 게다가 담배연기에 취약한 고가의 오디오 앞에서 피는 담배는 맛을 느끼기엔 너무 어색했다.

자리를 잡고 음악을 기다리는데 주인장이 들려주는 음악은 가요였다.

발매된 지 20여년이 된 노고지리의 ‘찻잔’이었다.

귀에 익은 멜로디지만 애써 듣지 않았던 곡이 나오는 어색한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곡이 끝날 때까지 숨을 죽인 채 말이 없던 일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이렇게 가요가 좋았단 말인가’ ‘오디오가 좋은 거여? 노래가 좋은 거여?’혼란은 계속된다.

다음 곡은 혜은이의 ‘제3한강교’다.

혜은이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에 우리의 혼란은 더욱 지속된다.

고전음악을 들은 후 나름의 음악평을 준비했던 우리로선 할 말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 무시했던 가요가 고전음악 못지않게 귀에 착착 감기니 이를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아무 말고 하지 못한 채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음반가게에서 노고지리 음반을 찾았다.

발매된 지 오래돼 독집 음반은 없고 여러 곡이 함께 수록된 컴필레이션 음반만 찾을 수 있었다.

집의 오디오에서 나오는 ‘찻잔’은 순천에서 듣던 만큼은 아니지만 꽤 훌륭했다.

지긋하게 눈을 감고 듣는 찻잔은 마치 향이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느낌이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음악을 듣는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깨달음은 얻은 원효 대사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접해보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 행동을 멈춰보자.

고전음악이든 재즈든 가요든 만족을 느낀다면 그것이 진정한 음악생활이 아닌가.

간단한 곳에서 음악생활의 정답을 찾게 됐다.

간단한 정답을 찾기 위해 너무 많이 돌아왔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도 노고지리의 ‘찻잔’을 즐겨 듣는다.

노래방에서도 애창곡이 됐다.

지금도 가끔 고전음악을 최고로 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 준다.

‘음악은 높고 낮음이 없다.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다를 뿐이다. 만족하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이다’라고.

이해하건 못하건 말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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