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천  

요즘처럼 '법(法)'이 사람들 입에 가볍게 오르내린 시절이 또 있었을까.

전대미문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국면을 겪으면서 부지불식간에 생긴 달갑잖은 기현상이다.

본의 아니게 박영수 특검과 헌법재판소가 부채질을 한 것은 웃지 못할 역설이다.

그러나 특검이 아니었으면, 박 대통령과 최 씨의 뇌물 공범 관계에 적용된 '경제공동체' 개념을 법률가가 아닌 이상 누가 들어봤겠는가. 원래 재판관 9명이 건재해야 하는 헌재 재판부에서 '8인 체제'는 별 문제가 없지만 '7인 체제'가 되면 대통령 탄핵심판을 못하게 될 줄은 또 누가 알았겠는가. 맘에 들지 않으면 아무 데나 '법치주의 위반' 딱지를 갖다 붙인 철면피들도 이런 풍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괄목상대한 것 아니냐고 하면 너무 안이한 태도다.

진실은 심각한 법의 오남용이자 법치주의 훼손에 가깝다.

최순실 사태가 초래한 최악의 손실은 아마 법치주의 추락일지 모른다.

흔히 법치주의를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마지막 보루라고 한다.

그런 법치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법을 말하면 소크라테스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악법도 법'이라는 그의 유언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서기 2세기 로마 법률가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가 처음 썼고, 1930년대 일본의 한 법철학자가 저서에 인용하면서 와전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제자 플라톤의 법사상을 법치주의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플라톤은 '철인의 지배'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차선 중 가장 우월한 것으로 '법의 지배'를 꼽았다.

그는 저서 '법률'에서 '법의 노예인 정부는 앞날이 밝고, 신이 국가에 퍼붓는 축복을 인간이 만끽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근대적 개념에 가까운 법치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한층 더 선명해졌다.

그는 주저 '정치학(politika)'에서 국가의 최고 권력을 누가 가져야 하는지 고민했다.

처음 내린 결론은 현인(賢人)도, 참주도, 부자도 아닌 민중이었다.

우수한 소수의 판단보다 평범한 다수의 생각을 모은 것이 더 낫다고 봤다.

요즘 말로 '집단지성'을 믿은 셈이다.

그런데 불의에 쉽게 휘말리는 '우중의 야만적 속성'을 놓고 회의가 생겼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마지막 선택은 노모스(nomos), 바로 법이었다.

그에게 법은 '욕망 없는 이성의 지배'였고, '올바르게 제정된 법'이 최고 권력을 행사하는 공동체가 '좋은 국가'였다.

당시 델로스 동맹의 맹주였던 아테네는 실제로 노모스에 의해 통치될 때 융성했고, 다수 민중의 힘이 법을 대신할 때 쇠퇴했다.

근대적 개념의 법치주의는 영국에서 만개했다.

모든 행정권은 법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는 원칙과 함께, 사람의 지배·권력의 지배를 대체하는 '법의 지배(Rule of Law)' 가 확립됐다.

군주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통제하는 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 권리장전 3부작이 바로 근대적 법정신이 응축된 기념비적 결과물이다.

명예혁명을 통해 국가 통치이론으로 확고히 뿌리를 내린 '법의 지배' 원칙은 미국으로 건너가 사법권 우위론으로 확장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헌법률 심사권은 이런 배경에서 도입됐다.

오늘날 법치주의는 종종 '법대로 하라' 정도의 단순함에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법에 없는 것은 하지 마라'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여기에 사법부의 재량적 판단도 개입한다.

결국 법의 해석과 적용의 문제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한테 법치주의는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는 관념적 잣대에 불과할지 모른다.

다행히 법적 정의의 실현은 대부분 건강한 법 의식과 실천 의지에 달려 있다.

특히 국가 지도자의 솔선수범은 그 나라의 법치 수준을 좌우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과거 에피소드는 그런 의미에서 참고할 만하다.

메르켈 총리가 2012년 4월 남편인 요아힘 자우어 훔볼트대 교수와 이탈리아 남부로 휴가를 떠났을 때 일이다.

메르켈 총리는 정부 전용기를 이용했는데 무슨 일인지 자우어 교수는 100유로짜리 저가항공기를 타고 갔다.

알려진 사정은 이렇다.

독일의 관련 법에 총리는 사적인 여행에도 전용기를 쓸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가족이 동승할 경우에는 1인당 약 1천300유로(158만원)의 이용료를 내야 한다.

양자화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기도 한 자우어 교수는 굳이 비싼 전용기를 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널찍한 총리 전용기의 안락함을 뿌리치는 대신 여비를 절약하고 스스로 법도 준수한 것이다.

전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사적인 목적으로 전용차를 쓸 때는 부인을 태우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 최종호 변호사의 'ㅍㅍㅅㅅ') 정언명령의 주창자인 칸트의 후예답게, 총리도 법치주의의 예외일 수 없다는 그들의 확고한 신념이 한없이 부럽다.

사실 법치와 정치는 어떤 면에서 이란성 쌍둥이와 같다.

공통의 순기능은 민주주의 사회의 다양한 이견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접근법은 많이 다르다.

법치는 엄정하지만 타협의 여지가 없고, 정치는 유연하지만 절충의 뒷맛이 쓰다.

어쨌든 우리의 현 사태를 정치적으로 풀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사라졌다.

우리는 법치의 결론을 선택했고 이제 헌재의 최종 결정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헌재 선고를 앞두고 불복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헌재를 마구 흔든 정치의 변심에 대가로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이 앞장서 헌재 결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승복을 약속하고 이행해야 한다.

헌재 결정 이후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시대는 달라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선택한 노모스의 참뜻을 한번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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