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섬세한 향의 묘사 상상력 자극··· 삶에대한 고민 깊이 더해 '정의란 무엇인가'

▲ /정희 전북일자리 종합센터 근무

최근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을 두고 살아가는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이다.

자의 반 타의 반 미니멀한 라이프를 살고 있는 나도 늘 숙고 끝에 물건을 구입을 하는 편인데, 어떤 날은 단지 외양에 홀려 물건을 집어 들곤 한다.

예쁜 것만도 감사한데, 간혹 숙고를 거쳐 구매한 물건들보다 더 오랜 기간 나와 함께 하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즐거움을 주는 행운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학생 시절, 백색 하드커버에 금테 문양이 예뻐 골랐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가 그 시작이었을까.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의 향 때문이라는 신선한 설정과 섬세한 향에 대한 묘사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체취 없이 태어나 자신의 영역에서 소외된 후각천재가 느끼는 상실감과 허탈함에 대한 연민, 충격적인 결말과 잔혹하고 경악스러움, 온갖 상큼하고 달콤하고 역겨운 냄새에 대한 묘사가 넘쳐흘러 활자에 배고픈 사람처럼 순식간에 읽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같은 작가의 <좀머 씨 이야기>는 한순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방랑하는 은둔자의 이야기이다. 누군가 그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기대로 집필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좀머씨는 그를 닮아있다.

말을 거의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좀머씨의 기이한 일상과 “제발 날 좀 내려버 두시오!”라는 대사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소설가의 본능을 숨길 수 없으면서도 관심은 피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모순적인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적당한 자기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생활을 통해 작가의 마음이 다소 이해되기도 한다. 좋든 싫든 피할 수 없는 평가와 평판은 행동을 제약하고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인물로 살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게 한다.

개인의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칭찬에도 불편과 부담을 느껴, 그저 나로 살아가는 자유로움을 잃게 된다.

관심 받는 것을 싫어하는 작가는 그 부담스러움이 마치 나를 주체가 아닌 누군가의 객체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또 다른 매력을 지닌 예쁜 책을 소개한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이어붙인 소설로, 화가의 그림 속 인물들을 모태로 작품 속 인물들에게 각각의 성격과 배경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책 페이지 중간 중간에 수록된 그의 삽화들은 일요일 오후 햇살을 머금은 듯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익숙한 인물의 초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표지 그림과 함께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림은 57페이지의 ‘우유 따르는 여인’이다. 다부진 체격의 여인이 졸졸졸 우유를 따르면서 졸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비교적 쉬운 우유 따르는 일을 하면서 고된 일을 잠깐 피하려는 듯도 하다.

그을린 손과 상기된 볼을 가진 이 여인은 주인공 그리트와 같이 일하는 하녀, 타네커로 묘사되었는데, 주인집에 충성하며 전형적인 하녀의 삶을 사는 인물이다.

눈을 내리깐 타네커의 모습과 달리 표지에 실린 그리트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귀고리를 한 채 독자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진주 귀고리는 주인공 그리트의 귓불에 상처를 내는 동시에 그녀를 구속된 삶에서 해방시키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들 하던데, 그리트는 그녀에게 닥친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은 그녀의 삶에 대한 당당한 태도였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삶의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깊이 생각해 보는 주제일 것이다.

길었던 대학생활을 마칠 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무심결에 내 손안에 들어왔다. 하버드대의 젊은 교수의 강좌를 옮긴 이 책은 미덕과 공리, 행복과 자유를 일상에 적용하여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며 극적이고 흥미로운 사례들이 실려 있다.

소수집단에 대한 우대정책,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이 상이군인 훈장을 받을 수 있는가, 대가를 받는 임신, 자유시장 철학 등 다양한 사례들로 풀어낸 철학자들의 사상을 읽노라면, 공동선의 추구와 그 안에 내가 속해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 사회가 어떤 철학을 공유하고 추구하는지에 따라 나라는 개인의 상황과 입장 또한 매우 달라질 것이다.

문득 시선을 돌려 나의 빈곤한 책장을 바라보니 온갖 문제집으로 가득하다. 사색 없는 지식으로 가득한 책장에서 작게나마 오랜 기간 함께 할 즐거움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내가 위에 소개한 책들을 우연히 만났던 것처럼 모두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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