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이춘석(민주당, 익산갑)

엊그제, 지역 사무실 앞에 쌓여있던 나락 푸대들을 농민회와 협의 하에 농협으로 실려 보냈다.

물론 겨우내 그 나락 푸대 더미와 함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숙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가물면 가문 대로 비가 많으면 많은 대로 흉년이어도 걱정, 풍년이어도 걱정인 것이 아무리 농부의 처지라지만, 우리나라에서 농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보다 훨씬 더 고달프고 서러운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가소득 보전은 거의 대부분 쌀직불금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직불금 제도는 WTO의 규정상 농업보조총액 제한에 걸리기 때문에 쌀값이 아무리 떨어져도 농가소득을 보전해 주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목표가격과 산지쌀값의 차액을 보전해주는 변동직불금의 총액을 맞추기 위해 산지 쌀값을 실제보다 높게 책정하는 편법을 쓰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이미 지급한 우선지급금까지 환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쌀값 폭락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 농민들의 원성은 높아만 가는데 정부는 여전히 조삼모사식 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급한 대로 변동직불금의 기준이 되는 목표가격 산정 시 쌀 생산비 및 물가변동률을 반영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올해가 새롭게 목표가격을 책정하는 해인만큼 목표가격 현실화를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농가소득 안정화를 위한 근본적 방안이 마련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목표가격을 아무리 높게 잡더라도 변동직불금 지급 총액에 대한 WTO 규정상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보조금을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농산물 시장 개방의 가속화 및 식품 소비 패턴의 변화, 예측불허의 기후 변화 등등 농업 여건 악화로 인해 농가 소득은 점점 하락하거나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쌀값 폭락에 대한 가격보전을 포함해 농가소득을 안정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제도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미국이나 일본, EU와 같은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품목 중심 직불제의 한계를 깨닫고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WTO의 제한규정들을 우회하려는 노력들을 해오고 있다.

실제 미국의 최저가격보장, 고정직불금, 경기대응소득보조금 등 3중 안전장치나 EU의 단일직불제는 농업 소득의 지속적인 하락에도 불구하고 농가 소득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스위스의 다원화된 직불제 역시 좋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나라들은 도농 간의 소득 격차나 농가들 사이에 빈부 격차를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농업에 가장 큰 위기요인은 무엇보다 국가의 근간산업인 농업에 대한 정부의 철학과 인식의 부재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농업의 새로운 기회를 얘기하기 전에,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농가에만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안정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주는 것이 선결과제다.

논밭을 지켜야 할 농민들이 생존을 위해 거리의 투사로 나서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농가의 경쟁력 제고나 농업기술의 혁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농정개혁의 핵심은 정부가 농업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농업이 피폐해진 나라치고 선진국이 된 전례는 없다.

뿌리가 흔들려서는 나무가 바로 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민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마음이 먼저 편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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