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문화 B급 감성으로 비틀기

▲ 지현 作 'No.19 mixed media'

어릴 적 잘 정돈된 빨래를 헝클고 싶고, 쌕쌕거리며 곤히 잠든 아가의 볼을 꼬집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또 새하얗게 쌓인 눈밭에 발자국을 내어보고 싶기도 했다. 평화로운 것에 잠시 심술을 내보고 싶은 충동 말이다. 규정돼 있는 것을 비트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또 그것은 어느 정도의 선이 필요하다. 본래의 것에서 너무 어긋나버리면 부조화가 일어나 외면 받을 수 있다.
지현작가는 어떤 이미지를 발견하면 그 이미지를 재조합하거나 서로 다른 이미지를 섞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미지들은 자연스레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편집자주


지현작가의 본명은 김지현이다. 김지현이라는 이름이 흔해 성을 빼고 지현으로 활동 중이다.

지현작가는 단 한 번의 개인전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개인전을 평범한 수준에서 치르고 싶지 않았던 작가는 첫 개인전에 많은 공을 들였다. 3m나 되는 대작을 2점이나 선보였고 이에 더해 2m 작품까지 있었다. 전시장을 찾은 이들은 규모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대작은 전체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리는 묘미가 있어요. 작품 자체가 크다보니 온 몸으로 붓질을 하게 돼요. 분명 오래 걸리고, 힘든 부분들이 있지만 완성됐을 때 희열감은 크죠. 그런 부분 때문에 대작을 즐겨하는 것 같아요.”

또 소재를 군상에서 찾다보니 이를 담기 위한 필연적인 부분도 있다.

2015년 작가가 선보였던 개인전의 주제는 ‘오만과 편견과 좀비’였다. 제목은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각색한 것으로 딸들이 수준급의 무술 실력으로 좀비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문화를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로 구분하기도 하잖아요. 그 구분 점에서 제가 하고 있는 회화는 고급문화로 분류되고요. 그런데 전 하위문화 속에서도 굉장히 마니아적인 길거리 문화들을 좋아해요. 이 두 가지를 섞어보고 싶더라고요.”

고급문화에 하위문화의 감성을 섞어 유희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시도였다. 이는 청년의 감성이기도 하다. 청년들에게는 저항문화가 있다. 이 저항정신을 갖고 있는 청년 지현작가는 고급문화를 업으로 삼고 있다.

자신이 업으로 하고 있는 예술이라는 틀에서 탈피해 B급 감성을 덧칠했다. 좀 더 나아가 진지함과는 동떨어진 가벼운 느낌의 키치문화를 가져왔다.

“고급문화로 여겨지는 예술작품들이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잖아요. 두 가지를 섞으면서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표출하고, 이에 더해 사회적 문제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작가가 이야기 하는 사회적 문제들은 굉장히 직설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진지하게만 표현하지 않는다. 유머적인 요소들을 넣어 반어적인 효과를 얻는다.

총을 들고 있는 이슬람 극단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대원에게 텔레토비 의상을 입히는 식이다. 또 피투성이로 경찰에 끌려가는 시위대의 피를 초록색으로 칠해 적나라함에서 벗어났다.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침울하잖아요. 유머를 섞어 반어적인 느낌으로 보여줄 때 더욱 강렬한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벼워 보이지만 진지함을 잃지 않으려 하죠.”

작가는 현재까지 자신이 보여준 작품들이 연구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작품에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고 ‘epidermis(표피) No.숫자’로 표현한 것도 그 이유다. 앞으로도 변화를 보여줄 작가는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회화가 가진 고유의 평면성을 더욱 살리고 싶어요. 화면 구성도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고요. 앞으로도 저의 연구는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지현 작가의 신작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오는 12월 중국에서 개인전을 열지만 국내에서 전시 계획은 당분간 없다.

“중국일정으로 바쁘게 지낼 것 같아요. 국내 개인전은 내후년에나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작품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프로필

전주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2015 ‘#1 오만과 편견과 좀비’(우진문화공간, 전주)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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