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고향 경북서 마주한 옛 다방 등 친숙한 일상성서 우리의 근현대사 담아

이동순 시인의 16번째 시집 ‘마을 올레’(모악)가 발간됐다.

문단에 등단한 44년 만에 펴낸 16번째 시집은 시에 대한 시인의 큰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열정은 치열한 시정신의 탐색과 연결됨을 감안하면 시인이 시세계는 무한하고 확장적이다.

현재나 미래보다는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사유의 폭을 늘리고 넓히는 것이다.

이번 책의 주된 무대는 시인의 고향 경북 일대다.

15개월 동안 이곳을 탐방하며 시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편안함과 푸근함이 느껴진다.

시 속에 펼쳐지는 정서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친근성이 있어 다시금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목화다방을 아시나요/ 상주 은천 면소재지 장터 끝에서/ (중략) 간판 하나가 걸려 있는데요/ 거기 쥔 마담은/ 한 자리에 사십 년 넘도록/ 시골다방을 지켜 왔대요’(목화다방 중에서)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현대화가 되기 전 시골마을엔 사십년이 아니라 그 이상 자리를 지켜 온 다방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방엔 칠순이 넘어도 약간 건달기 있는 어르신이 고정자리를 맡고 있고, 커피를 나는 아가씨들의 참새같은 목소리도 들리는 듯 하다.

다방엔 국자, 주전자, 벽에 걸린 액자, 불알시계 그리고 손 때 묻은 소파 등이 아련한 향기를 불러 일으킨다.

골동품 사이에 앉아 있노라며 자신도 스스로 골동품이 된다.

시인은 다양한 소재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사람들에게 노스탤지어를 일으키게 하며, 이는 곧 우리네 삶과 정서와 곧바로 연결된다.

시 한 편을 통해 저절로 잊혀졌던 과거의 단편이 떠오르니 시인의 언어능력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시인은 과거에만 연연 하지 않는다.

작품 ‘성찬이 형제’에선 마을회관에 놀러 온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언급한다.

이들의 얼굴엔 한국도 들어있고 캄보디아도 들어있다.

다문화가정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이 됐다.

사회는 이들을 위한 배려에 나섰고, 이제는 친숙한 일상성을 통해 우리네 생활상이 돼 버렸다.

시인은 이러한 점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기술한다.

작품 배경이 고향인 경북 일대라 하지만 시를 읽다보면 경북에 한정되지 않는 대한민국 전체임을 알 수 있다.

시골에 있는 다방이며, 새로운 식구가 된 다문화가정, 동네 어귀에 있는 거북바위 등은 비단 저자의 고향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은 고향을 노래하면서 총체적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근현대사를 함께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여행은 물리적 차원이 아니라 신화적, 설화적 여행도 하고, 공식적인 역사나 일상적 과거로의 여행도 서슴치 않는다.

저자는 이런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고향을 복원시키고, 잊혀져 가는 우리 문화와 정신적 유산까지 현재화한다.

송기한 문학평론가는 “시인은 여행을 통해 자신이 발견한 온갖 물상들이 낭만적 회고가 아니라 귀중한 정신적 발견임을 알려주고 있다”며 “과거로의 여행, 고향으로의 여행은 민족을 위한 순례이고 우리를 위한 순례이다”고 평했다.

박성우 시인은 “사람과 삶과 사랑을 한가운데 둔 시집이다. 편편이 애달프고 찡하다”며 “행복하게 살고 싶고 아름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그 답을 찾아가도 좋다”고 밝혔다.

경북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은 이동순 시인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마왕의 잠’을 등단했다.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등이 있고, 2003년엔 민족서사시 ‘흥범도’(5부작 10권)을 발간하기도 했다.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편저 ‘백서시전집’, ‘조명암시전집’ 등을 포함해 각종 저서 54권을 발간했다.

신동엽창작기금, 김삿갓문학상, 시와 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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