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지 전주시의회의장

몇 해 전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누적 관객 수 14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흥행 2위라는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전쟁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국제시장>이 이처럼 큰 관심과 사랑을 받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함께 눈물 흘렸으며, 희생으로 조국을 일으켜온 아버지, 어머니를 다시 한 번 존경스럽게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흥남부두에서 피난민들의 필사적인 탈출로 시작하는데, 실제로 흥남 주변에 몰려든 1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유엔군의 도움으로 선박을 통해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처 탑승하지 못한 이들과 배에 오르다 죽은 사람 등 많은 이들의 죽음과 생사이별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 슬픈 이별은‘굳세어라 금순아’라는 가요를 통해 회자되었는데, 피난 중 잃어버린 가족을 그리는 가사 말이 심금을 울린다. 6.25전쟁의 가장 큰 참상은, 이처럼 아무런 죄도 없는 숱한 국민들이 무자비한 상처와 비극에 노출되어야만 했다는데 있다.

사실, 6.25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들은 6.25전쟁을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특별한 사건과 작전명, 혹은 맥아더장군과 같은 이름으로만 기억할 뿐이다.

이 때문에, 남북분단이라는 세계 유일의 아픔도 실감하지 못하고, 통일에 대한 염원도 날로 희박해지는 듯하다.

6.25전쟁은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고 국토의 반을 산산조각 냈으며, 외세의 침략이 아닌 동족끼리 총부리를 마주한 참담한 전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은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6.25전쟁으로 한반도의 인구 약 10%인 400만 명이 실종 또는 사망했고, 이 중에는 한국군 약 63만 명, 유엔군 약 15만 명, 북한군 약 80만 명, 중공군 약 123만 명이라는 희생이 있었다.

또한 이산가족 수는 무려 1천만 명에 달했으며 17세 이하의 소년소녀 약 3만 여명을 강제징병 하여 그 중 3천여 명이 전사하였다고 하니, 그 처절하고 가슴 아픈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한 듯하다.

1953년 7월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이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을 체결함으로서, 3년간의 전쟁은 영영 휴전상태로 남게 되었다.

그 후 대한민국은 피땀 어린 노력과 열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 선진국의 대열에 서게 되었으며, 꾸준한 대화와 지원으로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최근까지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며 국제관계를 경색시키고 우리 정부의 노력까지도 헛되이 만드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6.25전쟁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

또한 숱한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회복해야 할 상처다.

67년 전 6월, 푸르른 신록이 가득했을 그 때에 꽃다운 청춘들이 전쟁의 총탄 속에 스러져갔다.

우리는 이 비극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처 회복을 위한 우리들의 적극적인 의지다.

그 첫 번째 길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다.

아울러, 6.25전쟁에 대해 제대로 알고 교육하며, 평화적 남북통일을 민족의 숙명이자 사명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들이 빛이 되어, 구슬픈‘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래가사처럼,‘통일된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울어보고 얼싸안고 춤도 추는’, 그러한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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