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란 시집 '뇌청소'··· '편지를 부친 날' '분수' 등 상실의 시대 따뜻한 감수성 선사

이경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뇌청소’(신아출판사)가 발간됐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번 시집은 1부 ‘뇌청소’, 2부 ‘눈’, 3부 ‘야성의 위로’, 4부 ‘감사해요’ 등으로 구분됐다.

시집은 전체적으로 몰입감의 요소로 가득하다.

책 제목과 같은 시 ‘뇌청소’가 그렇다.

‘뇌가 일침을 당했다/ 얼마치 세월이 흘러/ 서로가 서로를 스쳐간/ 그 모든 기억들까지/ 덩달아 뇌를 때렸다 놓았다 했다 (중략) 삭았던 뇌는 경련을 하였다/ 이제야 나의 뇌를 놓아주는구나!’(뇌청소 중에서) 강한 어조다.

뇌를 소재로 해 자신이 보냈던 세월의 기억을 되짚고 결국 뇌는 사랑이 한 단계 상승하던 꽃소식 가까이 들리던 날 청소가 완료된다.

직접적이고 직선적 단어를 통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몰입감이 충만하다.

어디 이뿐이랴. 작가는 추억을 상기하며 따뜻함과 인생살이의 맛도 전달한다.

‘혹여, 토라질까 봐/ 빠른 우편으로 편지를 부쳐놓고/ 겨울바람을 맞으며/ 걷는 걸음은/ 얼마나 흐뭇하고 다정한지-’(편지를 부친 날 중에서) 행여 토라질까 봐 빠른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는 연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컴퓨터가 발달되지 않은 시절, 편지를 써서 설레는 마음으로 부치는 사람들의 과거 모습이 떠오른다.

누구나 그러하듯,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 순간만큼 설레고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자판에 뚝딱 글을 쳐 마우스 몇 번 움직여 가상공간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현 세태가 못마땅할지 모른다.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 따뜻한 감수성을 통해 메마른 감성에 단비가 된다면 작가의 시는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 역시 시를 통한 삶에 감사하고 있다.

작품 ‘분수’에서 이같은 시인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시인이 되고/ 시집을 내고/ 무엇이 되어 행세했을 때/ 모교 후배들이/ 버릇없이 느껴져 시시했지/ 그들에게 화를 내었지/ 시인이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고/ 자식벌 되는 후배들을 보며/ 고개숙여 살고 (중략) 후배들은 미소짓는 얼굴로/ 인사해주었지/ 지금/ 그때의 내가 부럽지/ 지금, 그때의 삶이/ 비로소/ 감사하지’(분수 중에서) 주변의 박사나 교수도 무시하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시절을 담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박사는 물론 석사도 높아 보여 고개를 숙이게 된다.

버릇없는 후배들을 야단쳤건만 미소짓는 얼굴로 다가오는 이들을 통해 사람의 간사함을 노래한다.

‘미꾸라지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는 교훈을 직접적 삶의 체험을 통해 얻은 것이다.

김용철 목사는 “다른 시인의 시 같으면 한 두편 정도 읽다 잠이 와 덮어 버렸을 것이나 이경란 시인의 시은 몰입감과 감동을 주었다”며 “누구나 쉽고 벅찬 가슴으로 시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섯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고 평했다.

저자는 “시집을 완성시켜놓고 보니 무엇이 되고자 하였고, 무엇이 된 줄 알았었으니 원래 그러하였던데로 아무것도 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아닌 그대로의 상태로 남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며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과 부딪히기도 했지만 껴안을 수 있게돼 작은 행복을 느낀다”고 밝혔다.

시인이며 시낭송가인 이경란 저자는 2011년 계간 ‘크리스챤 문학’을 데뷔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저서론 ‘인생이 뭐길래 시가 뭐길래’ 등이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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