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근로자등 환영 "장선물등 사라져 순기능" 자영업자-농어민 '직격탄' 소매유통업 14.4% 매출↓ 농축산물 24.8% 줄어 울상 전문가 "부작용 계속 나와 여론 반영 후 개정 필요해"

지난 2015년 3월 제정·공포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9월 28일에서야 본격 시행됐다.

이 법안이 2011년 6월 처음 제안됐지만 정부 부처간 이견은 물론 국회에서도 표류를 거듭했다.

결국 여론에 밀려 간신히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공무원 등 공공기관 종사자’가 아닌 직군이 포함된 것과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법안에서 빠져 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일명 ‘김영란법(정식 약칭 ‘청탁금지법’)’은 이후에도 이슈의 중심에 섰다.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금품수수에 대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예외조항을 두는 등 처벌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부터 법을 적용 받는 직군이 광범위한 점 등을 문제 삼았다.

또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금품 범위를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등 상한선을 설정하면서 화훼업계는 물론 농민과 요식업계의 반발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공직사회와 시민들은 ‘청탁금지법’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에 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아 우리사회의 달라진 모습은 물론 개정에 대한 목소리도 들어봤다.
/편집자주


△‘청렴’이 강조되는 사회분위기 확산=전북지역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30대 김모씨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뒤 ‘저녁’시간이 생겼다.

이전에는 비정기적인 잦은 부서 회식에 민원인들의 반강제적 약속 등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법 시행 이후에는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내부 분위기에 대한 변화가 컸다.

시행 초기 거의 모든 부서원들이 저녁약속을 잡지 않는 것은 물론 점심도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시 됐다.

특히 정기적이진 않았지만 자주 있었던 회식도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으려는 듯 아예 사라졌다.

김씨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모든 민원인들과 사무실이나 청사에서 만났다.

또 개인적인 만남을 이어오던 친교모임에도 발길을 끊었다.

유난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청탁금지법’ 핑계를 대며 다소 어색했던 자리를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최근에는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주변 공원에서 산책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전에는 주말마다 피곤하다며 핑계로 가족 나들이를 미뤄왔지만 최근에는 가까운 산에 가족캠프를 가는 등 자주 나가고 있다.

김씨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부서회식 등 부서장 눈치를 보며 원하지 않는 술자리에 참석하는 일이 줄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며 “공직사회에 청렴이 강조되면서 공공연하게 준비해야 했던 ‘출장선물’ 등이 사라지는 등 부작용보다는 순기능이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김영란법 시행, 애꿎은 자영업자와 농어민 피해 불러와=하지만 김영란법이 청렴문화 정착에 기여하는 등 순기능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불똥이 애꿎은 외식업계와 화훼업계, 농어민에게 튀었기 때문이다.

시행 범위가 광범위한 데다 법 적용이 애매한 상황으로 인해 ‘무조건 하지 말자, 만나지 말자’는 식의 분위기로 공직사회가 필요 이상으로 긴장된 데다 품목을 고려하지 않은 절대적인 선물 가격 기준으로 인해 농축산업·화훼업·자영업·유통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농식품 분야 영향과 정책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에 따르면 김영란법이 처음 적용된 명절인 올 설 명절에 농축산물 선물세트 판매실적(주요 백화점·대형마트·소매유통업체 기준 4585억원)이 1년 전보다 14.4% 감소했다.

특히, 농축산물 판매액은 무려 24.8%나 줄었다.

품목별로는 과일 31%, 쇠고기 24.4%, 수산 19.8%, 가공식품 7.1% 등의 순으로 매출이 떨어졌다.

매출 규모로는 한우가 가장 많이 축소, 이로 인해 한우농가의 소득이 크게 위축되며 경영난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 전북도지회 정윤섭 회장은 “김영란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농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법 시행 이후 폐업 위기에 처한 농가가 많다”며 “이 법이 이대로 간다면 한우 농가의 줄도산으로 인해 우리나라 한우산업은 후퇴하게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지적했다.

화훼업계도 매출이 급감했다.

분화류의 매출은 지난해 대비 13.2% 줄었고, 난류도 24.3% 감소했다.

이로 인해 김영란법 시행 이후 문을 닫은 꽃집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외식업계 생산·고용 지표에도 먹구름을 몰고 왔다.

 최근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아 ‘국내 외식업 영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외식업체의 10곳 중 약 7곳이 김영란법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의 평균 매출감소율은 22.2%로, 외식업체 중 한식당이 68.8%로 가장 높았다.

뒤를 이어 일식 66.7%, 중식 64.3%로 업종별 편차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매출감소율은 일식이 35.0%로, 한식 21.0%, 중식 20.9%보다 월등히 높아, 일식의 타격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주시 효자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는 “김영란 메뉴까지 선보였지만 일식은 비싸다는 이미지 때문에 고객이 절반으로 줄었다.

특히, 공공기관 관계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내년이면 최저임금이 올라 인건비도 오르는데 매출은 줄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울러, 공직사회 내에서도 김영란법이 조직의 경직을 불러왔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사업 관련 관계자와 만남이 필요함에도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 이 자체를 꺼리다 보니 업무의 유연성이 사라짐은 물론 직원 간의 소통 역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 법 시행 1년, 이대로 좋은가=한국사회학회가 최근 주최한 ‘청탁금지법 1년과 한국사회’ 학술대회에서 국민 10명 중 9명은 ‘법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발표됐다.

이는 즉, 김영란법 시행 취지에 대해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적용 방식과 적용 기준에 대한 불만이 여전한 상황이다.

사회 투명성의 강화라는 긍정적인 효과와 달리 소비 침체에 따른 애꿎은 피해를 불러오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의도치 않게 법 시행 이후 소비 위축으로 내수시장이 경직된 만큼 적용 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농축수산업계와 외식업계 외에 직장인들 역시 조직의 경직화 등으로 규정 완화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대해 법을 발의했던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과 많은 시민단체에서는 크게 반대하고 있어 법 개정에 대한 논란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도내 경제계 관계자들은 “김영란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다수가 공감하지만 세부 안에 대한 논란은 여전한 만큼 시행 1년을 맞아 객관적인 분석과 국민 여론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과정을 거친 뒤에 개정을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 또한 부작용이 계속 나타나는데 무조건 개정이 안 된다고 하는 것 역시 문제다”고 말했다.

/김성아·최홍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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