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임명 관사서 살아" 김용철씨 초대부윤 며느리 증언 일부 주장 설득력 잃어 종지부

<속보> 군산시 월명동 22-2번지에 위치해 있는 건물이 해방이후 군산부(君山府) 초대부윤에서 3대 부윤까지 관사로 사용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본지 9월 18일자 9면 보도> 이 같은 사실은 김용철 초대부윤 며느리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확실해짐에 따라 그동안 부윤관사 명칭의 진위여부 논란에 대한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그 건물은 부윤이 아닌 시장이 관사로 사용했던 것이기 때문에 부윤관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됐다.

해당 건물은 당시 일본인이 소유했던 최고급 주택으로, 해방이후 적산가옥으로 정부에 귀속됐다가 초기 우리나라 부윤들이 관사로 활용했다.

이는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해서도 알 수 있는데, 해방이후 초대부윤으로 임명된 김용철 부윤의 임기는 1945년 10월 1일부터 1946년 11월 9일까지다.

이어 제2대 박봉섭 부윤이 1946년 11월 10일부터 1947년 12월 14일까지, 제3대 윤상훈 부윤이 1947년 12월 15일부터 1948년 10월 9일까지 뒤를 이었다.

이후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에 지방자치법 실시로 부(府)를 시(市)로 개칭하면서 부윤(府尹) 역시 시장(市長)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래서 제4대 김범초(1948.10.10~1950.04.14) 시장부터 ‘시장’이란 명칭을 사용하며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곳이 부윤관사라는 사실을 입증해줄만한 김용철 초대부윤 며느리 황소정(84) 여사를 수소문 끝에 충남 서천 마산면에서 만날 수 있었다.

황 여사는 “충남 서천이 고향인 시아버지는 군산으로 넘어와 여러 가지 사업을 하던 중 해방이후 초대부윤으로 임명받아 부윤관사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초대부윤 이후 2명의 부윤과 여려 명의 시장을 거친 후 1959년 6월에 또 다시 제10대 시장을 맡아 관사에서 함께 살았다”며 “부윤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관사도 부윤관사라고 불렀다”고 강조했다.

취재현장에서 전화통화를 한 김용철 초대부윤 딸 김경희(85) 여사도 “어렸을 적에 아버지를 부윤이라고 불렀으며, 해당 건물도 부윤관사라고 칭했다”며 “최근에 군산에 내려와 그곳을 가봤는데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어 마음이 아팠다며, 개보수를 통해 옛날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유주 강성용 사장은 “해당건물을 놓고 일각에서 부윤관사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며 “생생한 증언을 통해 명칭이 확실해진만큼, 군산시에서 적극적으로 근대문화재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에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리모델링에 들어가는데 자부담을 더 들여서라도 훼손된 옛날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 군산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해 주고 싶다”며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군산 부윤관사는 지상 2층에 대지면적 1,023㎡, 건축면적 200.3㎡ 넓이로 벽체를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했으며, 박공지붕에 아스팔트 싱글과 기와를 얹었고, 건물 뒤편에는 석등·석탑·연못 등을 갖춘 넓은 정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방과 부엌은 복도로 이어졌으며, 목조 계단을 통해 2층의 방들과 연결되고, 다다미를 깔아놓았던 흔적도 보여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군산=김기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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