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 가운데 증삼은 자기 수양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그가 자신을 살피는데 중점을 두었던 것은 도덕적 수양과 학문이었다.

그는 벗과 사회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가지라고 요구하고, 배움에 대해서는 부지런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날마다 거듭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점은 없었던가? 벗과 사귐에 진실하지 못했던 점은 없었던가? 스승에게 전수받은 것을 그냥 넘기지는 않았던가?”라는 증삼의 소박하면서도 진지한 언급은 그가 정직한 성품과 굳은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자기 수양의 모범이 되었다.

증삼과 아내 공양씨 사이에는 증원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공양씨가 장을 보러 나서는데 증원이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다.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어 그녀는 담벼락 아래에 있는 돼지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잘 들으면 장에 다녀와서 돼지를 잡아주마”라고 약속했다.

공양씨가 장을 보러나가자 중원은 책을 보고 있던 증삼에게 달려가 이런 사실을 말씀드렸다.

공양씨가 장에서 돌아오자 마침 증삼은 돼지를 붙들고 묶고 있고, 곁에 있던 증원은 신이나 있어 공양씨는 물었다.

“뭘 하시나요?” “돼지를 잡으려하오!” 공양씨는 증삼을 흘겨보며 “명절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돼지를 잡으려는 거예요?” 옆에 있던 아들 증원은 “엄마가 장에 갔다 오면 돼지를 잡아 주신다고 약속했잖아요?” 공양씨는 아들의 말에 대꾸도 없이 증삼을 막아서며 “아침에 돼지를 잡겠다고 한 것은 증원을 떼놓으려고 한 말일뿐이에요. 아이를 달래려고 한 말을 어른이 그대로 받아들이나요?” 증삼은 정색을 했다.

“아이를 속여서는 아니 되오 아이는 그것이 농담이라는 것을 몰라요. 아이는 부모를 본보기로 삼는 법이오. 어머니가 어찌 자식을 속일 수 있겠소? 부모는 아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오. 당신이 아이를 속이면 자식은 어머니를 믿지 않게 될 것이오. 아이가 자라서 당신처럼 속인다면 어찌하겠소?” 증삼의 말에 공양씨는 고개를 숙이고 증삼을 도와 돼지를 잡았다.

자녀는 부모의 민낯이 되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민낯 되기도 한다.

과연 기성세대 중에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최근 청소년들의 탈선과 어른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탈의 행위들로 경악하게 만들어 사회적 이슈로 되어있다.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을 넘어서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에 많은 사람의 공분을 만들었다.

폭력행위를 하는 것을 휴대폰을 통해 중계할 만큼 악행에 대해 조금의 양심조차도 가지지 못하는 행위에, 필자 역시 한탄스러움을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더욱이 표면에 나타난 사건이 단지 빙산의 일각이라면, 많은 학교에서 유사한 사건이 표면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왜 이렇게 까지 되었을까.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가. 그러한 행동을 어디서 어떻게 배우고 행동하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할 뿐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기성세대의 숨겨진 민낯으로 생각이 되어, 자성의 마음을 가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시대를 이루고 살아가는 기성세대의 불법과 탈법, 불의와 부정의 모습이 그대로 젊은 세대를 통해서 구현되는 것은 아닌지. 과연 기성세대들이 그들을 향한 비난과 야유와 저주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그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쳤는지 하는 자괴감이 든다.

매일처럼 신문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사건 사고들의 주역들의 잘못된 행동들은, 청소년들의 그릇된 본을 만든다.

공수가 바뀐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의 뻔뻔한 모습들, 초등학교 학생과 성관계를 가진 기혼 여교사의 서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는 변명, 남교사의 상습적 성추행, 자신이 낳은 자녀를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부모들, 자신에 집에 몰카를 설치하여 자녀의 친구를 촬영하려 했던 목사, 힘없는 자들에게 갑질을 통해 상처를 주는 어른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금품을 취하는 관리들, 다 나열하기에 지면이 부족하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일부 소수의 사람의 행동이기는 하지만 청소년 역시 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 소수의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들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행동을 모방하여 자신의 행동을 만들게 되기 때문에 어른들의 그릇된 행위는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잘못을 정당화 시키는 변명이 된다.

모범, 모든 사회 공동체 안에 어른들의 모범은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모델이 된다.

기성세대 모두는 자신의 일탈된 행동이 청소년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여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훌륭한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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