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가 10년 만에 일곱 번째 장편 ‘파묻힌 거인’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가즈오 이시구로가 10년 만에 일곱 번째 장편 ‘파묻힌 거인’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1989년 서른다섯 살 때 발표한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영미권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일찍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시구로는 등단 후 30년 동안 여섯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집만을 발표할 만큼 매 작품마다 완벽을 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결과 모든 작품이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고 부커상에만 네 번이나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때문에 10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일곱 번째 장편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평단과 대중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이시구로는 더 타임스의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에 선정될 만큼 현대 영미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명성보다는 동양과 서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시구로만의 낯설고 깊은 상실의 정서다.

이번 신작에서 역시 망각의 안개가 내린 고대 잉글랜드의 평원을 무대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또한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차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작가답게 이번 신작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판타지 모험담의 틀을 빌려 그 놀라움과 흥미진진함을 더하고 있다.

부커상 수상작가의 판타지 모험담이라는 의외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전히 이시구로만의 색채를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뒤흔들어놓는다.

개인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묻힌 거인’은 잃어버린 기억과 사랑, 복수와 전쟁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판타지라는 환상적인 무대 위에서 더욱 과감하게 파고들어간다.

실제로 이시구로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번 작품이 유고슬라비아 해체나 르완다 대학살 같은 현대의 역사적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파묻힌 거인’은 그 제목이 품고 있는 거대한 비유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랑의 여러 모습에 대해 탐구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국가와 민족이 전쟁과 상처에 대처하고 회복하는 방식에 관한, 나아가 전후 갈등 해소에 관한 우화로도 읽힐 수 있는 풍성한 작품이다.

용과 요정과 도깨비, 전사와 기사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판타지의 틀 속에서 이토록 애틋하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는, 또한 첨예한 현실의 문제까지 읽어내게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대가의 솜씨임이 틀림없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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