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알리는 장 '팜파티' 음악회로 시작해 15개 농가 농산물 기부-후원 농가 40여개 함께 성장하는 농촌 꿈꿔

최근 번잡한 도심을 떠나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귀촌을 고민하거나 은퇴 이후 삶을 위해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라북도도 지난 2012년 광역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귀농귀촌지원센터’를 열고 귀농․귀촌인 유치에 적극 나섰다.

특히 전북혁신도시에 농촌진흥청과 한국농수산대학 등이 이전하면서 전라북도가 귀농 1번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을 안고 귀농한 이들이 정착한 농촌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준비 부족 등의 이유로 다시 도심으로 떠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농도 전라북도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이미 정착한 귀농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봤다.
/편집자주


△혼자만의 ‘고전분투’

어려서부터 시골에 살았던 감나무집농원 양필모(42) 대표의 귀농은 순탄치 못했다.

부모님이 일궈 낸 농사를 이어 받았지만 정착은 그리 쉽게 되지 않았다.

양 대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아버지는 현재 감나무집농원 부지에서 감 농사를 지었다.

이전에 소와 돼지를 키웠으나 생각만큼 큰 수익을 벌지 못했다.

또 참외밭 등 밭작물에 도전했지만 이도 시원치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감 재배는 나쁘지 않았고 1990년도 초반에 문을 연 어머니의 음식점 덕분에 먹고사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정읍에서 학교를 졸업한 양 대표는 2001년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상경해 어머님을 따라 음식점을 열었다.

혼자 힘으로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에 시작한 ‘삼겹살집’은 나름 괜찮게 운영됐다.

승강기도 없는 건물 3층에 입점한 음식집이었지만 독특한 아이디어로 제법 손님을 모으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었지만 맞는 않은 옷을 입은 듯 겉도는 생황이 이어졌다.

결국 2004년 귀농을 결심하고 서울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해 2005년 7월 다시 정읍으로 내려왔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손님들을 끌기 위해 식당에서 기르던 ‘흑돼지’였다.

도심 한 복판에서 기르는 흑돼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의 방문이 느는 것을 보고 농촌에도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다면 사람들 모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손에 쥔 1천200만원을 들고 온 양 대표는 ‘미래’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감 농사와 어머니의 음식점을 혼합한 사업 모델인 농촌관광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의 만류가 컸다.

농촌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비아냥부터 조용한 시골마을을 망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래도 양 대표는 감나무를 심은 부지 일부를 밀어내고 ‘축구장’ 조성을 서둘렀다.

음식점에 찾아 온 손님들에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다들 인근 초등학교에 가면 되는데 괜한 돈을 들인다고 만류했다.

이내 준비했던 자금이 백만원이 넘는 장비 임대비용 등으로 불과 15일 만에 모두 소진돼 직접 삽을 들고 부지를 다져 천연잔디가 깔린 축구장을 만들었다.

여기서 양 대표의 기행은 끝나지 않았다.

틈틈이 감을 따 곶감으로 만들어 판매한 자금으로 또 다른 일인 농가민박용 주택을 지은 것이다.

지금은 펜션으로 불리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일이었다.

이 역시도 많은 뒷말을 만들었지만 묵묵히 추진했다.

양필모 대표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농업과 연계해 먹고 즐길 것을 만들면 길이 보일 것 같았다”며 “감 농사와 어머니의 식당이 합쳐지면 가능하다고 판단해 시작했다”고 밝혔다.

2009년께는 재배한 감을 공판장에 판매하는 것도 그만 뒀다.

식당을 찾은 관광객들이 나무에 열린 감을 따고 가지를 꺾어가는 일이 잦아졌지만 오히려 수익은 늘었기 때문이다.

당시 농업체험이라는 개념이 희박했지만 ‘감나무집농원’에 온 식당손님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준 셈이다.

또 감을 씻던 물저장고를 수영장으로 바꾸고 찜질방을 신축하는 등 여름과 겨울 농원을 찾아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들었다.

이런 양 대표의 노력으로 ‘감나무집농원’은 올해 하반기 정읍에서 유일하게 6차 산업 인증 농가가 됐다.

양 대표는 “이전에는 과일 농사를 지어 이를 공판장 등에 판매하면 됐지만 농산물시장이 개방되면서 수입과일들이 늘어나 판로를 찾기 어려워졌다”며 “처음 시작할 당시 주5일제가 시행되기 전이었지만 휴일에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앞으로 농업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적중한 셈이다”고 말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축제 ‘팜파티’

귀농한지 12년 동안 이를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많았다.

처음 농촌관광을 고민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많이 했다.

하지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축구장을 만들고 펜션을 짓고, 수영장, 찜질방 등을 혼자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마을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기까지 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이후에도 함께 하려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귀농인과 마찬가지로 농업기술센터를 들락거리고 여러 지역 농민단체에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다행히 정읍을 넘어 인근 부안과 김제 등의 귀농인들을 만나면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모여 지난 2014년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다.

지역민들과 함께 농산물에 대해 고민하고 어울릴 수 있는 것은 물론 힘들게 지은 농산물을 알리는 장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제 금모래마당(대표 조성천), 정읍 단풍고을영농조합(대표 홍종진), 부안 천지엔영농조합(대표 최광석)이 모여 처음으로 개최한 음악회는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양 대표가 사비 200여만원을 들였지만 나머지 농가에서도 농산물 등을 기꺼이 내놓아 무료로 음식을 대접했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농산물을 설명하고 전시하는 등 농산물을 홍보했다.

당장 매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함께 하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지난해부터 음악회를 ‘팜파티’로 바꿔 올해까지 4차례 열린 행사는 제법 규모도 커졌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농가가 올해 15개로 늘었고 농산물을 후원하거나 재능을 기부하는 농가도 40여개에 이른다.

행사 당일 참여한 인원도 크게 늘어 200인분을 준비했던 고기가 부족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 13일 4번째 팜파티를 마무리한 양 대표는 “널뛰기를 할 때 내가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 널을 굴러 상대방이 높이 올라가야 한다”며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며 지원하기 시작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내년도 ‘팜파티’는 전북지역의 농민들이 참여하는 전국행사로 키울 계획이다.

양 대표는 “이제까지 사비와 농민들의 힘만으로 진행하면서 행사 규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다음 행사부터는 관공서에서 지원을 받아 참여 농가를 늘리고 5일 정도 농산물을 홍보할 수 있는 부스운영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북의 농민들의 ‘팜파티’를 열어 전국민들이 찾아오는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귀농인은 물론 농민들의 사랑방으로 ‘감나무집농원’을 키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양필모 대표는 “농산물 판매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함께 힘을 모으지 않으면 힘들어지고 있다”며 “처음 귀농한 뒤 4년 동안 컨테이너 생활을 하는 등 힘든 경험을 귀농인들이 겪지 않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홍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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