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으로 보는 정치
영화 '남한산성'으로 보는 정치
  • 송일섭
  • 승인 2017.11.02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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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국가의 존망, 그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이다.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의 전쟁사이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사뭇 엄중하기만 하다.

우리에게 이 영화는 단순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남북문제를 넘어 주변국의 이익이 상충되는 북핵문제도 보였고,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의 논쟁도 스쳤다.

영화 속의 주인공 최명길과 김상헌이 보여준 치열함이 이런 사안들에도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먼저 북핵문제를 들여다보자.

당사자인 대한민국과 북한, 그리고 주변국인 미국, 일본, 중국, 소련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미 가공할 무기체계를 완성하였다는 듯이 핵실험을 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지 않은가.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막말 논쟁을 보노라면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다.

북핵문제는 영화 <남한산성>에 비춰본다면 청의 침략만큼 커다란 일이고 문제적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를 두고 최명길과 김상헌의 양론으로 크게 갈라져 있다.

한쪽에서는 마지막까지 대화의 창을 열어두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제야말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핵무기 개발과 배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관료들마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표출되기도 하였으니, 어느 일방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체로 야당은 김상헌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부와 여당은 최명길이가 된 듯한 느낌이다.

오랑캐에게 굴복할 수 없다며 끝까지 항전을 주장했던 김상헌의 대의명분, 결코 죽음의 길로 갈 수 없다며 치욕을 당하더라도 삶을 모색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두고 어느 것이 바른 선택이라고 할 수 없듯, 지금 우리의 처지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양측 주장에는 모두 삶의 길도 있고, 죽음의 길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 인조 임금으로서는 참으로 고독한 결단을 해야 할 상황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무엇을 선택해도 비난과 책임이 따랐을 것이고, 그 어디에나 감내해야 할 고통과 굴욕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군주는 적의 가랑이 속을 기어가는 수모를 겪더라도 자신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최명길의 주장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도자는 백성들의 삶에 기초한 결단을 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핵을 보유하여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국민의 삶을 바로 세우는 일인가.

비핵화 논리로 핵의 확산을 억제함으로써 핵무기 경쟁체제를 피해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필자 자신도 어느 일방을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적폐청산을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것인데, 한쪽에서는 ‘정치보복’이라고 한다.

사실 이 점에서는 최명길이나 김상헌으로 갈려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정치라는 괴물은 너무 낯설고 그저 뻔뻔하기만 하다.

정치가 프레임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범법행위를 두둔하는 것으로는 프레임을 짜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쪽에서는 ‘적폐청산’으로 또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보복’으로 프레임을 걸고 싸움을 하고 있다.

영화 <남한산성>에는 양쪽의 주장에 대의가 있었지만, 여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극단의 집단주의가 작동할 뿐, 한 조각의 대의(大義)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개인도 집단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이 교정될 때 경계가 되고, 역사 발전을 추동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적당히 묵과하고 넘어가면 반드시 되풀이 될 뿐이다.

지금까지 정권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많은 적폐들이 단 한 차례도 청산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정권의 국정문란 사태에서도 누구 하나 나서서 “아니 되옵니다”라고 나서지 못한 것도 적폐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정국은 시끄럽다.

공격하고 방어하는 데 맞춰진 공방이라면 차라리 그만 두는 게 낫다.

적폐청산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정치보복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일이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프레임을 걸어놓고 당연이 해야 할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은 바른 정치가 아니다.

양식 있는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불법을 기획하고 저질렀던 범죄자를 어떤 법으로 용인하자는 것인가.

최명길의 주화론도 김상헌의 주전론도 옹호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 땅의 지도자 모두가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함께 대의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이제 정치도, 경제도 상식적으로 해야 한다.

잘못한 것은 고치고 바로잡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학교에서는 그렇게 늘 가르치는데, 정치가들은 잘못을 괴변으로 감싸고, 오히려 두둔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권은 잘못에 대해서는 스스로 고개를 낮추고 국민 앞에 겸허해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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