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라 호령했던 위용 '다시 한번'
500년 전라 호령했던 위용 '다시 한번'
  • 이신우
  • 승인 2017.11.23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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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년 같은 장소 1만2천평 웅대
감사 집무실인 '선화당 중심 이뤄
2005년 복원논의 2019년 모습 드러내
아시아 문화심장터 핵심공간 '우뚝'

2019년 봄이면 복원된 전라감영이 새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공사’의 착공을 알리는 문화기공식이 열렸다.

조선시대 500년간 호남의 상징이었던 전라감영 재창조를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전라북도와 전주시는 전라감영의 선화당을 비롯한 7개 건물 복원에 도비(50%)와 시비(50%) 등 총 예산 84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전라감영이 복원되면 전주 한옥마을과 풍남문, 풍패지관, 걷고싶은 거리를 연결하는 전주 관광의 또 하나의 중심축이 될 전망이다.

‘구도심 100만평 아시아문화심장터’의 핵심공간으로서 전라감영이 전주시민의 자긍심으로 다가올 날이 멀지 않았다.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과 의미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전라감영의 역사적 의미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전라도를 총괄하는 지방통치관서였다.

조선왕조 50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전주를 지켜왔다.

조선시대 전라도는 현재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까지를 포함했다.

특히 전주는 전라도의 최고 통치관서 전라감영을 소유한 호남제일성이었다.

감영 터로서, 옛 도청사 터인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호남의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다.

이후 전라감영터는 근대화 과정에서도 100여 년간 전라북도 행정의 중심지로서 보존돼야 할 충분한 가치를 평가 받고 있다.

이처럼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천 년을 지켜온 산실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전라감영 자리에 전라북도청이 들어섰다.

지난 2005년까지 전북 도정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같은 해 전북도청이 서부신시가지로 이전하면서 전라감영 복원 논의가 본격화됐다.

전주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해서였다.

오랜 논의 끝에 마침내 2015년 구도청사 철거를 시작으로 감영 복원이 본격화됐다.

전라도 지명은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탄생했다.

전라감영은 다른 도의 감영과 달리 조선 500년간 같은 장소를 유지했다.

감영의 규모나 건물 규모도 조선조 감영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조선 태조의 관향이 전주였다는 사실 때문에 객사와 감영, 부영 배치의 조화뿐만 아니라 경기전, 조경묘가 적절한 공간 배치를 이루고 조성됐다.

이처럼 전라감영은 다른 감영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주부성의 총면적은 18만평.

이 가운데 전라감영은 1만 2천평, 전주부영은 7천여평이다.

옛 전북도청이 있던 전라감영지는 지난 2000년 9월 8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있던 곳은 옛 전북도청이 자리했던 곳이다.

풍남문에서 객사를 향해 반듯하게 뚫린 주작대로 좌편에 감영, 우편에 전주부영이 자리해 좌감영, 우부영의 도시 구조를 유지했다.

전라감영의 전체면적은 1만 2천평 정도였으며 중심 건물은 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이다.

선화당(宣化堂)이란 이름은 ‘宣上德而化下民(선상덕이화하민)’ 즉 ‘임금의 덕을 베풂으로써 백성을 교화한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선화당은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東軒)과 달리 어느 도나 관찰사 집무청을 선화당이라 칭하고 그 정청 중앙에 ‘宣化堂’이란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전라감영은 민중권력의 출발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지난 1894년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호남 일대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전라감영을 점령했다.

전봉준은 관찰사와의 담판으로 전라도 일대의 폐정 개혁을 담당하는 집강소를 각 군현에 설치하고 개혁의 중심기구인 대도소를 전주객사와 감영에 설치했다.

봉건왕조에서 억압과 수탈의 대상이었던 농민들이 지방권력을 장악하고 직접 개혁을 단행하는 한국근대사 초유의 농민권력을 행사했다.

이는 한국근대사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개혁의 중심지 전라감영은 한국근대사에서 최초로 농민권력기구가 설치된 곳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고증과 복원…새로운 콘텐츠로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로 57 옛 도청사 자리였던 전라감영 터.

시는 최근 문화기공식을 시작으로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공사에 첫 삽을 떴다.

7개 건물의 감영복원에 75억, 가상·증강현실, 홀로그램 등 콘텐츠에 9억원 등 총 84억원이 투입된다.

18개월의 사업기간이 끝나면 복원된 전라감영을 만나볼 수 있게 된다.

전라감영 복원 논의는 지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도청이 서부신시가지로 이전하면서 2009년 전라감영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2014년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가 결성됐다.

전주시와 전라감영복원재창조위원회는 전라감영 복원 건물의 실시설계 안에 대해 실무위원회와 고건축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등 꾸준한 논의를 이어왔다.

또한 구도청사 건물 철거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유구의 흔적과 각종 고지도, 문헌의 기록과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전라감영의 원형을 찾는 작업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지난 11월 전라감영 복원에 속도를 낼 전라감영지 발굴조사가 마무리됐다.

지난 2016년 6월부터 약 5개월에 걸쳐 전라감영 복원 예정지 전체면적(16,117㎡) 중 지하층이 있는 경찰청동 등 총 9,115㎡ 부지의 발굴조사를 마쳤다.

발굴조사 결과 전라감영의 핵심인 선화당과 내아, 관풍각, 내삼문, 비장청터 등 전라감영의 주요 건물터를 확인했다.

발굴조사에서는 회화나무 인근 고려시대 건물터 1개소와 선화당 추정터 남동쪽 1개소 등 2개의 우물도 조사됐다.

이 가운데 선화당 남동쪽에 위치한 우물은 1928년과 1937년 도면에도 표기돼 있어 선화당의 위치를 확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점이 됐다.

또한 1928년과 1937년의 도면에 표기된 일제강점기 도청사 건물의 기단부 전면과 후면이 조사됐는데 이를 실측한 결과 선화당 위치가 정확히 일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는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와 논의를 거쳐 복원될 건물 활용의 구체적인 방향과 콘텐츠를 결정하고 향후 창의적인 콘텐츠로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전통문화관광 중심…구도심 핵심공간  

전라감영 문화기공식은 단순한 공사착공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주가 전통문화 중심도시로서 날갯짓을 시작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됐다.

특히 전통문화 도시 전주시는 전라감영을 ‘구도심 100만평 아시아문화심장터’의 핵심공간으로 복원하기 위해 야심찬 꿈을 꾸고 있다.

전라감영은 역사적으로 전라문화와도 긴밀히 연결돼 왔다.

전라문화를 활짝 꽃피우는 매개체 역할을 했던 것에서 더 큰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전라감영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전주 한지로 완판본 전적들을 간행해 조선의 인쇄문화 발전에 기여해 왔다.

감영 내의 지소와 인청은 인쇄술의 발전과 완판본의 간행을 통해 전라문화의 지식기반을 축적하고 보급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또한 조선후기에 다양한 완판본 소설과 가사류의 간행으로 판소리의 보급과 민중의식 성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선자청을 두고 감영에서 부채를 제조함으로써 전주 합죽선을 비롯한 부재 제조기술 발전에도 역할을 담당했다.

이처럼 전라감영은 전주 구도심 개발과 전통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복원돼야 마땅하다는데 이견이 없다.

전라감영 복원사업은 단순히 건물 복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호남제일성으로서 전주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전라도 문화 발전의 기반이 됐다는 점에서 건물 복원과 함께 전라도 문화 거점지를 동시에 복원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특히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은 전주의 관광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전주의 구도심을 활성화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전주시 핵심 관광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주 한옥마을~풍남문~풍패지관~걷고싶은 거리를 연결하는 전주 관광의 중요한 축이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향후 한옥마을의 외연 확장과 원도심 활성화에 기여할 전망이다.

복원된 전라감영은 옛 4대문안 역사 도심 회복과도 맞물려 있다.

전라감영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문화자원을 간직한 4대문안이 복원되면 한옥마을로 국한된 전주관광의 영역이 더욱 더 넓어져 침체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2019년 어느 봄날 다시 태어날 전라감영은 전주시민들에게 무한한 역사적 자긍심을 심어줄 것으로 보인다.

▲(Tip)-전라감영 연표

•고려시대

1018년(현종 9)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하여 ‘전라도’라 칭함

1088년(우왕 14) 전주성 창축, 4대문 설치
 

•조선시대 조선초 선화당 등 전라감영 창건

1392년(태조 1) 조선건국, 완산유수부 승격

1403년(태종 3) 전주부라 부름

1410년(태종 10) 경기전에 태조어진 봉안

1439년(세종 21) 전주에 조선왕조실록 봉안

1473년(성종 4) 실록각 건립

1483(성종 14) 풍패지관에 매월당 건립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선화당 소실

1598년(선조 31) 선화당 중건(전라감사 황신)

1614년(광해군 6) 경기전 중건

1654년(효종 5) 중진영 신설

1676년(숙종 2) 경기전 별전 건립

1688년(숙종 14) 연신당 창건(전라감사 이유)

1728년(영조 4) 응청당 건립 1734년(영조 10) 전주부성 개축(전라감사 조현명)

1743년(영조 19) 포정루 창건(전라감사 조영국)

1758년(영조 34) 풍락헌 개건(전주판관 서호수)

1771년(영조 47) 선화당 재건(전라감사 윤동승)

1792년(정조 16) 선화당 소실, 중건(전라감사 정민시)

1859년(철종 10) 포정루 중수(전라감사 조휘림)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군 전주 점령

1895년 전주, 나주, 남원, 제주부로 분할 : 23부제

1896년 전라남도, 전라북도 분리 : 13도제
 

•일제강점기~현재

1907년 전주부성 서벽 철거

1910년 관찰사를 도장관으로 고침

1911년 전주부성 동벽 철거

1919년 도장관을 도지사로 개칭

1921년 도청 신축

1937년 감영부지 축소 5,100평(조선시대 12,000평)

1938년 도청 증축

1951년 도청 화재, 선화당 완전 소실

1952년 구도청사 건립

1994년 전라감영 복원 논의

2000년 전라감영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107호 지정

2005년 구도청사 이전(신청사 신축), 전라감영부지 시굴조사

2006년 전라감영부지 발굴조사

2007년 전라감영 복원 기본계획 연구

2009년 전라감영 복원 추진위원회 출범

2010년 전라감영 선화당 위치 규명

2012년 전라감영 복원 현상공모 실시

2014년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 출범

2015년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 고유례, 구 도청사 철거

2019년 전라감영 복원 1단계 사업 완료  

/이신우기자 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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