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이춘기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30년간 기록한 일기속 의례-세시풍속등 담겨

익산시 이춘기 농부의 30년 일기를 집대성한 책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가 발간됐다.

책은 1961년부터 1990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됐고, 호남방언이나 농촌 체험, 기독교 신앙, 한자 지식 등이 없으면 읽기 어려울 정도로 흔한 일기가 아니다.

일기는 개인 일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우리의 일생의례와 세시풍속, 여가생활의 양상들, 기독교 신앙생활과 기타 사연들, 특히 일제 강점기 말 공출과 3.1운동, 6.25 등 우리 현대사의 중요사건들에 대한 체험적인 회상이 기록됐다.

일생의례와 세시풍속을 매년 자세하게 적어 30년 동안 우리네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익산시 대장촌 농촌에서 생활했던 한 농부의 이야기지만 농부의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리얼한 표현에 생생감마저 주고 있다.

간간이 그려져 있는 삽화도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가족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가감 없이 기록했기에 유족마저 숨겨두고 싶은 것도 적지 않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허물을 세상에 읽히기 위해 자신들을 내려놓은 용기도 필요할 듯싶다.

책은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자신의 삶을 적은 기록정신과 삶에 대한 긍정적 정신이 가득하다.

병든 아내가 죽기까지 당사자와 간호하는 가족의 심리 변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남겨진 아이들 양육의 부담이 어떠했는지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년에 이르러 독거노인이 돼 지내는 어려움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어 노인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 농부의 30년 일기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이춘기 농부의 처조카사위 박성수 서울대 교수를 통해서다.

그는 농부 이춘기의 4남 종실씨를 우연히 만나게 됐고, 일기 보관문제를 찾아보기 위해 여러 궁리를 했다.

그 뒤 출판사 사장에게 의뢰를 했고, 현 시점에 맞는 문장으로 수정돼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또 서경대 이복규 교수는 일기는 분석한 논문을 지난 달 18일 서울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무형문화학회 학술대회에 발표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후 3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이 일기는 시대의 상세한 기록으로 문화콘텐츠적인 의의가 가득하다는 평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편집돼 출간됐다.

1부와 2부는 부인 투병과 작고, 사별 후 재혼 그리고 실패 등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이라 거의 그대로 실렸고 3부는 가족과 세시풍속, 기념일과 관련 있는 것만 발췌해 재편집됐다.

이복규 교수는 “하루 하루를 금쪽같이 살다 가신 분의 눈길을 따라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의 세월여행을 하고 나니 마치 또 하나의 인생을 살아낸 것만 같다”며 “세상은 나와 다르다란 일기의 마지막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난이 중첩된 세월이었지만 해마다 소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글쓴이인 농부 이춘기는 1906년 익산 춘포면 출생으로 1925년 결혼 그리고 1933년 대장교회 성경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성경공부를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익산원예협동조합 조합장으로 활동했고, 1984년 고향을 떠날 때까지 복숭아 농사를 주업으로 벼농사, 채소, 누에치기 등을 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뒤 1991년 미국에서 사망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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