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의 빨간 냄비가 광장마다 자리했다.

흰 눈이 내리건 찬바람이 몰아치건 산타를 연상케 하는 빨간 옷을 입은 봉사자들이 종을 흔든다.

매년 이어지는 연말의 풍경으로, 그제야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그만 어린아이부터 수염이 덥수룩한 어르신까지 크고 작은 봉투와 성금을 들고 냄비로 향하는 모습은 그저 보기만 해도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다.

 연말 온정의 상징이자, 구세군의 상징으로 알려진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난민과 빈민에게 성탄절을 맞아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던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는 옛날 영국에서 사용하던 방법을 떠올렸다.

그는 오클랜드 부두에 주방용 큰 냄비를 걸고 ‘이 냄비를 끓게 합시다’라고 써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여 명의 빈민들에게 충분한 돈이 모금되었다.

이후 매년 연말 전 세계에서 자선냄비가 운영되고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본부의 연 모금액이 100억 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중 거리모금이 38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거리에서 모은 작은 정성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기부금 모금 비영리단체 관계자들은 싸늘한 기부민심으로 인해 올 겨울이 더욱 춥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기부단체인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현재 모금 추이를 보여주는 ‘사랑의 온도탑’의 수은주 높이도 예년에 비해 유독 오르지 않고 있다.

같은 기간 대비 30%가량 적은 금액이 모였다고 하니, 그 차이가 꽤 크다.

 이러한 현상은 올 하반기 논란이 됐던 이영학 사건뿐만 아니라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정농단 등의 사회 불신으로부터 오는 후폭풍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부의 범죄와 부패가 약자들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기부금을 분배하고 정산하는 과정의 검증과 잣대는 확고히 하되,   기부 자체를 나누는 마음만큼은 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주시의회는 2014년부터 ‘급여 끝전 떼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34명의 시의원과 50여명의 의회 사무국 직원들이 동참하여, 자신의 급여에서 1만원 미만의 금액을 떼어 기부하는 것이다.

비록 개인에게는 작은 돈이지만 80여명의 정성이 모이면 매달 귀한 나눔이 된다.

 요즘은 밥값보다 커피 값이 더 비싸다는 말이 있다.

커피 한 잔이 주는 기쁨도 물론 크지만 누군가를 향해 기부를 한다면 그 기쁨의 향기는 두 배 세배로 오래 갈 것이다.

 “광야를 걸어가는 길동무가 있어, 없는 가운데에도 서로 나누는 자는 멸하는 세상이라 해도 멸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비록 날로 각박하고 어려운 시대라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이 바로 행복이라고 믿는다.

/김명지 전주시의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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