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수도 전주 문화 띠잇기 #3

청학루-한벽당-오목대서 가락 뽐내던 소리꾼 사라져
단오등 시민행사서 긍지 뽐내던 전통소리 찾기 어려워
"전주땅 소리의 축제-장 만들 귀명창 양성 이뤄내야"

1977년4월 봄날 전주시 완산동 서천교 건너 산기슭에는 고색 창연한 거루고각 한 채가 큰 고래등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눈처럼 하얗게 꽃잎을 날리고 그 사이로 누군지 모를 명창의 소리 한대목이 허공으로 울려 퍼졌다 청학루! 이름만큼 무수히 많은 역사와 사연이 있을 법도 하건만 지금은 인터넷 검색에도 들어있지 않은 단어이다.

청학루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모르나 1977년 비사벌 예술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알게 된 고옥(古屋)이다 어르신들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서 수많은 명인 명창들이 기량을 학습하고 배출되었으며 철마다 시율풍류객들이 찾아들어 풍광을 만끽하며 세월을 즐기던 곳이라고 들었다.

어디 청학루 뿐이랴!한벽당, 오목대, 덕진연못의 취향정 그리고 전주교 다리 밑과 조경단 소나무 숲 지금의 전주시청 자리인 과거 전주역 앞 휴식 공간 등 곳곳에서는 꼭 뛰어난 명창이 아니어도 귀명창들과 소리꾼들이 모여들어 제각기 소리 한 자락을 뽐내며 전주가 판소리의 본향임을 여지없이 증명해 주었다.

음력 오월단오일이 되면 덕진연못은 전국에서 창포물을 맞으려고 몰려든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덕진공설운동장에서는 대사습놀이가 펼쳐져 온도시가 그야말로 축제의 도가니가 되었다.

단오 인파가 얼마나 많았으면 그 인파들을 수용하기 위해 덕진역이 생겼다니 당시 전주 단오날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단오행사의 중심에는 전주대사습놀이가 있었고 각 분야의 장원자들은 당시 35사단에서 제공한 꽃으로 장식된 지프차를 타고 시내 퍼레이드를 하여 장원자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었다.

전주가 국악수도로 또는 전통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듯 소리와 연관 있는 유적지가 산재해 있고 전통문화와 소리가 연관된 시민축제가 성행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전주는 오래전부터 곳곳이 소리와 춤이 곁들여진 지붕 없는 공연장이었으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연히 소리꾼이 되고 풍류객이 되었다 2018년.

그때로부터 지금을 생각해보면 많이 변해있다 전주를 찾은 풍류객들을 온몸으로 받아 성숙시켰던 청학루는 온데간데없이 몇몇 노인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고 개발에 밀려 묻혀버린 그 많던 명소들은 주인 잃은 나룻배처럼 간간히 찾아오는 데이트손님에게 자리를 빌려주는 신세가 되었다.

거창한 규모의 최신식 공연장이라는 것에 자리를 대접받은 판소리와 민살풀이 춤은 푹 곰삭은 막걸리 같은 맛을 잃은체 소주와 레몬을 가미한 술처럼 퓨전이란 이름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 이것도 다행인가? 변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와 세월을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변하기 때문에 전통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고 지켜야 한다는 이유가 생긴다.

그러나 지킨다는 것이 꼭 보존 한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국악의 활성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귀명창의 양성이다.

귀명창들이 많이 양산되어 오목대를 찾고 한벽루를 찾고 조경단과 남천교를 찾아 다시금 전주땅을 축제의 무대로 만들고 시민 모두가 소리꾼이 되고 풍류객이 되어야한다.

이제 다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전주의 독특한 전통문화를 예전처럼 시민모두가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 지금보다 더 수준 높은 명실상부한 국악수도 문화수도로 크게 발돋움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곧 우리 전주의 저력이 되고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유민건설 유기환 대표(전주비사벌예술학교 8회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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