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의약분업이 이루어져서 지금 지속되고 있다.

의약분업을 건축에 비유한다면 의사의 처방권은 건축사의 설계권에 해당되는 것이고 약사의 조제권은 건설사의 시공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조제권은 약사법 23조에 ‘약사가 아니면 조제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의사의 처방권은 의료법 18조에 권리가 아닌 의무로 되어 있다.

의사의 처방권이란 무엇인가? 동일한 감기환자라도 개인의 증상과 체질 나이 건강상태 등이 다름으로 그에 따라 약의 용량과 성분의 가감은 물론 동일한 성분의 약도 제약사와 제품명을 명시하여 처방전을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건축사들은 동일한 KS제품의 시멘트라도 충북에서 생산되는 C사제품과 강원도에서 만들어지는 H사제품의 색깔이 서로 다른 것을 알고 있다.

요즈음처럼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디자인 성향에 따라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대리석의 문양과 동종의 나무라도 산지에 따라 농담이 얼마나 다양한지, 드라이비트는 어느 회사 제품이 좋은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80년대 없어진 조달청의 규제가 관행으로 굳어지고, 더욱이 설계자문위원회 설치 등 조례로 규제되어 재료명은 써도 제품명은 쓰지 못하는 폐해와 설계도서상의 자재가 뒤바뀌는 현상이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폐해 중 가장 큰 것은 민이나 관이나 시공자의 입김에 좌우되어 엉뚱한 색깔과 질감으로 설계자의 의도와 다르게 시공되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건축에 감리자가 따로 있어 설계자가 시공과정에서 배제되어 왔다.

이제는 건축법 시행규칙 제14조 개정에 따라 설계도상에 품종, 분류, 제품명, 제조회사, 즉 칼라, 재질 등을 표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설계자에게 자재 선택권이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시공현장에서는 설계자 의도와 상관 없이 임의로 변경되고 있다.

언젠가 리움미술관을 돌아보는 도중, 시공사로부터 검정콘크리트 구체에 관한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이를 설계한 외국 건축사는 반드시 검정콘크리트 구체를 요구하였다.

불가하다 했더니 ‘일본은 되는데 왜 한국은 안 되는가’질책하기에 오기가 발동하여 폐타이어 가루를 넣어보기도 하고 물감을 섞어보기도 했으나 실패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성공한 후 일본을 가보니 그곳은 도색이제 구체가 아니었다면서, 고생은 했으나 덕분에 세계최초의 검정콘크리트 기술을 확보하였고 작가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며 흐뭇해하였다.

그들이 국내건축사에게도 그리했겠는가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설계감리와 건축사의 권위가 제도적으로 정착해야 하는 일이다.

설계도서는 건축사만이 할 수 있는 의사의 처방전과 같은 것이다.

같은 성분의 약이 있어도 약 이름이 처방전과 다르면 약사는 조제하지 못한다.

설계도서도 이와 같이 시공사나 건축주 그 누구도 건축사의 동의 없이 바꿀 수 없어야 한다.

건축사법에서 “설계는 설계도서의 작성뿐 아니라 이를 해설하며 지도자문하는 행위를 말 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도자문이란 설계감리권 이다.

이제 자재선택권과 설계감리권을 확실히 찾아야 한다.

또한 건축사는 교육을 통한 전문지식 습득에 가일층 분발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와 노력 있어야만 건축문화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다.

신기술제품과 예산절약도 좋으나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어리석음이 지속되지 않기를 함께 기대해 본다.

/주)라인종합건축사사무소 김남중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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