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갈대
생각하는 갈대
  • 강태문
  • 승인 2018.01.18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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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부모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존재이다.

기뻐서 뛰고 안타까워서 뛰고 반가워서 뛰고 때론 미워서도 뛴다.

잠자는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뛴다.

사랑과 관심이 그 심장을 뛰게 만든다.

지난 주일에 가까운 지인의 자녀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다.

평소 자녀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관계로 자녀의 동향을 알고 있는 터였는데 두 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보내야 하는 큰 슬픔을 당하여 필자 역시 가슴이 먹먹하고 사실처럼 여겨지지 않는데 당사자는 어떨까하는 생각에 가슴만 아플 뿐이었다.

교사 임용시험이라고 염려로 심장이 뛰고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기쁨에 심장이 뛰었는데, 둘째의 대학수시합격에 크게 기뻐하며 심장이 뛰었는데 이제 그 심장이 뛰게 하는 존재가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심장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자신의 한치 앞에 있는 일도 알 수 없고 내일의 자신의 운명도 알지 못한 채 오늘이라는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지내는 한없이 나약하고 흔들리는 존재지만 인간이 고귀한 것은 사고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지는 존엄성은 오로지 사고하는 힘에 있다.

인간의 생활이란 생각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거처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살아간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 가지는 가치는 이성적 판단을 통한 사고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며 그로인해 인간은 인격이라는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인격체이고 짐승은 짐승의 품격을 가지는 것이어서 인간이 인격적 가치를 이루지 못하면 짐승 같은 존재로 치부되는 것이다.

많이 회자되는 말이지만 파스칼의 저서 팡세의 기록에 “불행의 원인은 늘 자신에게 있다.

몸이 굽으니 그림자도 굽었다.

어찌 그림자 굽은 것을 한탄할 것인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료해줄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몸이 굽으니 그림자도 굽었다”는 말처럼 사람의 정신이 부패하면 몸은 부패한 행동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그 부패한 정신을 올바로 잡아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일 뿐이다.

인간의 내부에 있는 모순되는 두 요소가 있는데 천사의 일면과 금수의 일면 중 어느 쪽이 나를 지배하는가는 자신의 사고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같은 심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똑같은 상황에 어떤 사람은 뜨겁게 뛰는데 어떤 사람은 차갑게 식어 뛰지 않는다.

마치 고장나버린 심장처럼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냉담해진 것이다.

끊임없이 뉴스의 한 면을 장식하는 아동학대, 그것도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학대하거나 죽음으로 몰아버리는 사건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냉담해진 그들의 심장을 보는 것 같다.

인간이 가진 고유한 영역인 이성적 판단을 통해 사고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인격적 존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람이 가진 가치를 상실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인권조차도 지켜줄 필요조차도 없다고 여겨 얼굴을 공개하라고 말한다.

사람이 자신의 욕심에 사로잡히고 자기중심이 되면 주변에 올바른 반응을 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오직 자신의 원하는 일에만 반응하고 자신의 즐거움과 기쁨에 반응하여 가슴이 뜨거워진다.

자신이 바라는 일에 장애가 되었거나 문제가 되면 분노하고 그 분노에 따른 행동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장애의 대상에 대해 몰인정한 태도를 통해 보복하는 것으로 자신의 안위로 삼고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도 자신의 감정을 통해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키기도 한다.

현 시대가 갈수록 분노조절 능력을 상실해 가는 것으로 인해 감정적 행동이 돌출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부패한 마음의 상태가 독한 행동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은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포용하고 살아도 부족한 곳이다.

땅에 존재하는 재난과 재앙, 사건과 사고, 많은 질병들이 고통과 슬픔을 주어서 상실감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실감을 서로의 사랑과 이해를 통해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과 슬픔의 많은 부분들이 사실은 사람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많다.

앞서 기록하였듯이 사람은 아주 나약하고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단지 서로 돕는 관계를 통해서 그 나약함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필자는 최근 가까운 지인의 자녀의 교통사고를 통해 사람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서 사는 날 동안 인간이 가진 고유한 가치인 이성적 올바른 사고를 통해 올바른 가치를 이루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인격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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