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阿附)’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나는 엉뚱하게도 다른 방식으로 ‘아부’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즉, ‘아부’란 ‘아랫사람과 부하를 살뜰하게 챙겨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철원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아부(阿附)의 달인을 만났는데, 그는 바로 중대장이었다.

우리 중대는 연대급 부대에서 가장 화력이 센 무기로 편재된 전투지원중대였다.

따라서 우리 중대장은 소령 진급에서 아주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패기가 넘쳤고, 때로는 당당하고 멋진 군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능숙한 아부꾼에 불과했을 뿐, 부대의 사기를 높이고 전력을 강화하지 못했다.

봄에는 병사들에게 두릅을 채취해 오게 했고, 가을에는 더덕을 캐게 했다.

겨울에는 산골짜기 도랑물을 뒤져서 겨울잠에 빠진 개구리를 잡아오게 하였다.

이것으로 술안주를 만들어서 연대 참모들이 테니스를 치거나 회식을 할 때마다 봉헌하느라 바빴다.

병사들의 몫으로 나오는 면세 맥주도 독차지해서 이 또한 아부하는 데에 썼다. 

나는 당시 병사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했다.

회식할 때는 ‘시작과 끝이 분명해야 한다’고 했고, 훈련이나 작업할 때는 ‘할 때는 열심히 하고 놀 때는 신나게 놀자’고 했다.

그날도 우리는 중대장의 지시대로 일찌감치 작업을 마치고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대에서 회의를 마치고 온 그가 우리 소대원들이 축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낸 것이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로 저리 화가 났을까를 생각하면서 중대장실로 갔다. 그는 나를 쏘아보더니 불쑥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야, 임마, 너 어느 나라 군대야?”

‘야 임마’라니? 나는 그 말에 기분이 몹시 상하고 말았다.

중대장 역할이라도 잘하면서 그런다면 모를 일이지만, 아부에 눈먼 사람이 ‘어느 나라 군대’라니.

나는 느물거리는 말투로 어깃장을 놓고 말았다. 

“어느 나라 군대라니요? 대한민국 군대지요.” 

이 말 한 마디로 우리는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는 대뜸 권총을 뽑아들더니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송중위, 너 나한테 항명하는 거야?” 

“이게, 항명입니까? 내가 무엇을 항명 했나요?‘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의 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상급 부대 참모들에게는 아첨하기에 바쁜 그가 중대원들에게는 유독 강한 체하였지만, 나는 은근히 그와 대적하면서 ‘아부의 궤변’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승진하지 못했다.

똑똑한 이(李) 하사를 그렇게 미워하더니, 그의 ‘소원수리’ 한 장에 그만 후방의 예비군 훈련부대로 끌려갔다는 후문을 들었다.

한 개인의 꿈이 좌절된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군대 조직을 위해서는 참으로 잘된 일이었다.

그는 아부(阿附)의 달인으로 상사의 마음을 샀을지는 모르지만, 부하들의 마음은 얻지 못했다.

요즘 세상에 어디에 아랫사람이 있고 부하가 있을까마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을 모두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역할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함께 가야할 동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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