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에 모악산 기를 받고자 정상에 올랐다.

멀리 전주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는데 유럽의 도시에서와는 다른 전주시내는 뽀족뽀족한 아파트만 보이는 도시였다.

왜 도시가 이렇게 되었지 하는 질문으로 멍해져 온다.

건축 설계하는 사람으로서는 제일 김빠지는 일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화로서의 건축에는 관심이 거의 없으면서도 부동산으로서의 건축에는 극렬한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포탈의 메뉴에 건축이 없겠는가.

오로지 연예, 스포츠, 영화, 자동차, 부동산이라는 메뉴가 있을 뿐인데, 건축은 그 중 부동산에 속해 있을 뿐이다.

아무튼 부동산은 우리나라에서는 자산 증식의 핵심 아이템인지라 늘 관심대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울 강남의 아파트 재건축은 단연 최고의 이슈이고 말도 안 되게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보니, 정부도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서울의 집값을 올리고 투기를 조장하는 주범이라 보고 집값을 잡으려고 각가지 정책과 규제를 짜내는 것 같다.

재건축 층수를 제한하고, 초과이익 환수제를 시행하고, 재건축연한을 30년에서 40년으로 늘이네 마네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투자와 자산의 황금탑으로 보일 고층 아파트가 나에겐 왜 이렇게 위태위태한 서민자산의 바벨탑처럼 보이는 것일까.

 지금도 이 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에 지어지고 있는 고층아파트들로 관심을 돌려보자.

그리 멀지 않은, 40년 후에 고층아파트들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고층아파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건물은 매우 낡게 된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에 따라 가치가 뚝 떨어질 것이다.

아파트가 낡으면 재건축을 할 수 있지만, 그 때 이미 재건축 하려고 덤비는 건설회사는 슬프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시간이 지날수록 쉽게 허물지도 못한 채 중간 중간 빈집이 있는 상태로 슬럼화될 것이 뻔하다.

팔려고 해도 쉽게 팔리지도 않을 것이고, 판다해도 이미 그 가치가 매우 떨어진 상태일 것이고, 워낙 고층이라 땅에 대한 소유권인 지분도 극히 적을 것이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몇 십 년 전 건설회사에 전 재산을 주고 아파트를 구매한 서민들의 파산이요, 우리나라 도시경관의 쇠락이다.

꼭 부동산 버블이 꺼져야지만 파산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파트라는, 집 위에 집을 탐욕스럽게 쌓아 올린 욕망의 바벨탑이 물리적으로 낡아서 무너져 내리면서 생기는 쇠락이다.

그건 나이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듯이, 어떤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출산율이 이미 세계적으로도 최하여서 인구절벽을 바라보고 있고, 이제는 지방도시의 중흥은커녕 존속마저 걱정해야하는 상황인데나에게 이런 고층아파트로 이루어진 도시의 경관을 바라보는 일이란 그래서 늘 조마조마하다.

나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부디 장기적 관점에서의 정책을 수립해 주기를 바란다.

재건축 층수는 최대한 제한해야 하고, 농어촌 소도시에 지어지는 고층아파트의 신규건설은 당장 고려해야 한다.

재건축하는 층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재건축이 불가능한 지역에 고층아파트를 더 지으면 지을수록 아파트가 노후하면 나중에 돌아올 서민자산의 타격은 그만큼 더 커질 뿐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짓겠다고 하고, 사람들은 사겠다고 하는데 어쩌겠냐고? 아무리 자본이 원한다고 해도, 시장의 논리에 맡겨도 되는 것과 맡기면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건설 회사들이 원하는 대로, 그리고 당장은 팔린다는 이유로 고층아파트를 지방구석구석까지 짓도록 놔두는 것은 이제 무책임한 결정일 뿐이다.

고층아파트는 장기적 관점에서 절대로 우리나라 경제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없다.

재벌인 건설회사가 아니라 집을 사는 서민을 생각하는 정책, 그리고 지금 당장이 아니라 50년 100년 후를 바라보고 더 나은 정책을 세우는 것, 그게 바로 제대로 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영국 사람들은 아파트를 부의 상징이라 생각하고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고층아파트를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형태라 생각하고 싫어한다.

(작년에 대형 화재 참사가 났던 런던의 고층아파트는 그래서 서민들만 살고 있다가 참변을 당했다.) 그리고 아파트보다는 아무리 작더라도 자기만의 마당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 가꾸면서 살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을 훨씬 더 선호한다.

그래서 런던에는 고층아파트가 거의 없이 2-3층짜리 주택들이 즐비하다.

앞으로 30여년 후, 우리나라에서 고층아파트들이 슬럼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그때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을 고층아파트에서 사는 것보다 더 좋아하게 될까? 그래서 아파트가 아닌 저층주택들로 도시가 다시 채워지면서 도시경관이 변화하게 될까? 도시 경관도 경관이지만, 아무래도 그 편이 지금처럼 고층아파트로 가득 찬 풍경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이 덜 조마조마할 것 같긴 하다.

/주)라인종합건축사사무소 김남중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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