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맡는 은은한 남원역사 만들기"
걸으면서 맡는 은은한 남원역사 만들기"
  • 장두선
  • 승인 2018.03.14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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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당 박동식 고택 '몽심재'
도선국사 전설 마애여래좌상
2채만 남은 샛집 덕처리 초가

최명희 혼불의 무대 '서도역'
정유재란 타버린 만북사 석인상
약 300년전 세워진 운봉 석장스

남원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일컫는 8경이 전해온다.

교룡산에 비치는 석양풍경이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게 하면서 이루는 영롱한 구름바다와 함박눈이 내리는 축천(丑川)의 저녁 설경! 그리고 금암봉에서 내려다 본 요천에서 횃불로 고기잡는 풍경, 비안정 앞뜰 백사장에 떼지어 앉는 기러기 떼들의 모습과 선원사에서 들리는 은은한 저녁 종소리, 광한루원의 가을 달빛과 저녁 무렵 요천의 하류인 순자강에서 돌아오는 고깃배들의 무리, 그리고 주천계곡을 흘러 내리는 구룡폭포의 물소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비록 세상이 바뀌면서 남원 8경의 풍광과 정취는 많이 잊혀져 갔지만 찾는 사람들에게서만 보이는 매력으로 남원은 여전히 그 신비함과 여유로움을 감추고 있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으면 비로소 느껴지는 감성여행을 위해 남원시는 단체 관광객이 찾지 않았던 숨은 보석 10선을 추천한다.
특히 사진 애호가들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영감을 주는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은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역사의 향기를 간직한 풍경들이니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라 하겠다.


1) 조선후기 만석꾼 죽산박씨 고택 ‘몽심재(夢心齋)’

몽심재는 조선 후기 전라도 남원지역에서 만석꾼 소리를 들으며 과객 대접이 후하기로 소문났던 죽산박씨 연당(蓮堂) 박동식(朴東式, 1763∼1830년) 고택의 사랑채이다.
지리산 자락인 견두산(犬頭山) 아래에 자리 잡은 이 고택은 구례, 순천 쪽에서 과거 보러 올라가는 선비들이 들르는 단골 사랑채가 되었다.
전라도뿐 아니라 함양쪽에서 넘어오는 영남선비들 도 남원을 거쳐서 한양으로 올라갔는데, 별 일 없는 한 몽심재에 머물렀다.
대접이 후해서 선비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들렀다고 한다.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2길 19)

 

2) 신계리 마애여래좌상

거대한 바위를 몸체 뒤의 광배(光背)로 삼고 자연 암반을 대좌(臺座)로 삼은 마애불인데, 매우 도드라지게 조각하여 부피감이 풍부하다.
3m가 넘는 이 불상은 도선 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양감이 풍부한 얼굴 표현 등은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이지만, 풍만한 신체에 비하여 각 부분의 세부 표현이 간략화된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여겨진다.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산18)


3) 홍예문(虹霓門)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의 교룡산 중턱을 따라 천연적인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돌을 튼튼하게 축조하였으며, 그 둘레는 3,120m에 달한다.
축성당시성안에는 99개의 우물과 작은 골짜기, 군창 등이 산재해 있었고, 동서 남북의 4대문이 모두 있었으나 현재는 홍예문과 산성 일부가 그 옛날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홍예문을 들어서면 좁은 비탈길 옆에 교룡산성을 지켰던 역대 무관 별장들의 기적비(記籍碑)들이 보인다.(남원시 산곡동 산15-2)


4) 덕치리 초가

1895년(고종 32)에 이주하여 3대 째 살고 있는 이 샛집을 마을 사람들은 ‘구석집'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앞쪽으로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지리산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어 경관이 좋다. 원래는 마을 전체가 샛집 이었는데 다 없어지고 2채만 남아 있다.
샛집은 주로 낙동강 주변의 들이나 산에서 나는 참억새의 한 종류인 새풀을 엮어서 지붕을 얹은 집인데, 그 수명이 볏짚 지붕보다 오래 가기 때문에 보통 1세대마다 1번씩 바꾼다.(남원시 주천면 회덕길 25-8)


5) 서어나무숲

남원운봉읍 행정마을의 서어나무 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곳으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200여 년 전 조성한 인공 숲이다.
행정리 서어나무 숲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약 100여 그루의 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숲은 늘 15℃ 안팎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철에도 시원하다. 또한, 지리산 운봉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그 풍광 또한 빼어 난 곳으로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더위를 쫓기에 알맞은 곳이다.(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284)


6) 대곡리 암각화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 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 놓은 것을 말하는데, 주로 농사의 풍요와 생산의 의미를 지니는 주술행위의 결과물 로 보인다. 대곡리 암각화는 봉황대로 불리는 구릉의 정상 부근 암벽에 새긴 것으로 호남지방에서 유일한 선사시대의 암각화로 두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크기는 1∼2m 내외이며, 상하 혹은 좌우 대칭 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겼다.
마모가 심하여 자세하지는 않지만,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묘사한 듯하다.(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401)


7) 혼불의 무대, 풍광이 아름다운 폐역 ‘서도역’

서도역(書道驛)은 전라선 남원역과 오수역 사이에 있는 간이역으로 1930년대 건축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기차역으로 소설가 최명희가 집필한 대하 소설 ‘혼불’의 무대이기도 하다.
서도역은 2002년 전라선 철도 이설로 신역사를 준공하여, 역은 이전되었지만 1932년 준공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 하고 있으며, 현재는 영상 촬영장으로 옛 추억을 되새기는 문화공원으로 조성 되어 있다. 가까이에 혼불문학관도 둘러 볼 수 있다.(남원시 사매면 서도길 23-17)


8) 만복사지 석인상

기린산을 북쪽에 두고 남쪽으로 넓은 평야를 둔 야산에 위치한 만복사터는 고려 문종 (재위 1046∼1083) 때 지어진 것으로 전한다. 5층과 2층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법당이 있었고, 그 안에는 높이 35척(약 10m)의 불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과 수백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큰 절이었으나 정유재란(1597)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불타 버렸다고 한다. 발굴 조사 시 많은 건물의 흔적을 찾았으며 청자와 백자, 기와 등이 출토되어 고려시대 미술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남원시 왕정동 481-1)


9) 운봉 석장승

서천리 당산은 당산나무, 돌장승, 솟대로 구성되어 마을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남녀 한 쌍인 돌장승은 운봉초교 서쪽 500m여 지점에 마주보고 서 있는 부부 장승이며, 이 주변에 당산나무가 있다. 
부부장승은 마을 허한 곳을 방어하고 서쪽을 진입한다는 의미에서 각각 ‘방어 대장군’,‘진서대장군’이라 새겨져 있다. 
이석장승들은 만든 이가 다른 듯 벙거지의 제작형식이나 표현기법이 서로 다르다. 방어대장군은 높이 2.2m, 진서대 장군은 높이 2.07m정도이며, 약 300년 전 세워 진 것으로 추정된다.(남원시 운봉읍 수철길 59-96)


10) 운봉 공안서당

지리산 청학동 공안서당은 지리산 바래봉 600m 고지에 터를 잡고, 인성과 예절, 한문에 대한 이해를 비롯하여 기초 한문인 사자소학, 천자문, 명심보감 및 사서삼경, 심경, 근사록을 친자연, 친환경속에 학생들을 가르친다. 경남하동 청학동 서당 연수원에서 초대 대표훈장을 맡았던 이 학규훈장이 남원시 운봉읍에 공안서당을 건립하여 학생들의 인성과 예절교육, 자연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예절 학당을 열었다.(남원시 운봉읍 수철길 59-96)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삶을 관조하던 선조들의 정취에 못지 않게 가는 곳마다 우리에게 삶을 여백을 남겨준다. 시간이 없다고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그져 발을 몸추고 바라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벼워진다. 남원은 그렇게 볼 일이다.

/남원=장두선기자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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