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어김없이 폴리페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현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주자인 문재인 후보의 캠프에는 무려 1천 명이 넘는 교수가 가담했다고 한다. '정책공간 국민성장'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더불어포럼' '국민아그레망' 등 각종 외곽조직이 다양한 전공의 대학교수들을 흡수했다. 오죽하면 캠프 자체도 정확한 참여 인원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경쟁 상대진영에서는 캠프 참여 교수들이 정권획득 이후에 각종 직위를 노릴 거라는 점을 들어 한국 정치의 적폐일 뿐이라고 맹공을 퍼붓는다. 하지만 폴리페서 논란과 관련해서는 어떤 캠프도 자유로울 수 없다.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말은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로 '정치철새교수'로 불리기도 한다. 학문적 성취나 전문성을 이용해 정관계에 하루아침에 진출하려는 대학교수를 일컫는 말로, '조롱'과 '경멸'의 의미가 많이 담겨 있다. 결코, 가치 중립적인 용어는 아니다. 학문 연구는 게을리한 채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그러다 보니 논문표절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에 연루되기도 하고, 결국은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정치판으로 만들기도 했던 사례가 있었기에 이런 부정적 인상이 생겼을 것이다.

폴리페서라는 단어는 웹스터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한국식 영어라는 주장도 있지만 정확한 기원은 알 길이 없다. 궁금한 점은 영어 사전에 폴리페서라는 단어가 왜 없나 하는 거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대학교수가 정치하는 일이 드물어서일까. 아니면 정치에 뛰어드는 교수가 있더라도 학문적 책임을 방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나. 아마 그렇지는 않을 듯싶다. 굳이 통계를 내보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를 조금만 둘러보면 교수 출신의 국가지도자, 국회의원, 장관이 매우 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전문지식으로 국가에 봉사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수의 정치참여에 우리 같은 반감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서양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동하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가르친다."

전문 지식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현상은 사실 보편적이다. 현대의 최고 전문가 집단 중 하나는 아무래도 대학교수일 테니 이들이 정치에 이런저런 형태로 참여하는 걸 일탈로만 보기도 어렵다. 정치는 최첨단 지식이 필요하고, 법률은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이를 허용한다. 다만 정치판을 기웃거리다가 어느새 학교로 복귀하고, 자신의 부재로 인한 공백은 나 몰라라 하는 행태가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대학 자체의 규율과 학자적 양심으로 해소할 문제다.

교수는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전문가는 기능인에 가깝고, 지식인은 비판적인 정신으로 무장한 전문가다. 지식인에게 필수적인 정신은 과학적 사고이며, 그 기본은 모든 판단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비판 정신이다. '지식인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이 비판의식이 오류를 바로잡는 가장 적절한 수단일 때가 많다. 정치에 적극 참여키로 한 대학교수들이 '폴리페서'라는 오명을 뛰어넘고 싶다면 '전문가적인 지식인'의 역할을 권력 내부에서 맡아야 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우리는 반면교사를 충분하게 봤다. 안종범, 김상률, 김종, 홍기택 등이 그들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를 무조건 따른 것을 후회했다. "대통령 지시에 순응한다는 차원에서 나름대로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재판에서 증언했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대통령과 최순실로부터 이용당했다고 생각한다"라는 정도까지 말했다. 그래 봐야 뒤늦은 후회이고 책임회피일 뿐이다. 이들이 전문가에 그치지 않고 '건전한 반대자'로서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면 이런 회한은 필요 없었을 터이다. 이제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파면된 지경에서 이르러서는 이들이 최악의 폴리페서라는 평가를 벗어날 길이 없다. 

/이병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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