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동학농민혁명정신이 헌법전문에 실리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민주정신인 동학혁명정신, 5.18 광주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해 후손들에게 호국정신, 민주정신을 계승하여 국민이 편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기원해 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알다시피 동학혁명은 1984년 1월 고부 조병갑의 학정에 못 이겨 정읍 농민이 무장 봉기했으며, 동학혁명은 민간 협치에 의한 집강소 설치로 조선 왕정시대에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 민관 협치에 의한 민주 정신은 3.1 독립선언의 주축이며 항일 독립운동 자금줄 역할을 하였고 4.19로 이어지는 이 땅의 민주화 정신의 주춧돌로 자리잡았다, 동학혁명을 주도한 동학은 평등사회를 구현하고 반외세, 반봉건에 저항 한 최초의 민주주의 실현의 발로였다.

호남의 정신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충경공이정란 장군의 호국정신, 동학혁명군이 주장한 관료의 부패척결, 신분계급이 없는 평등사회구현을 실현하고자 한 민간 협치 결정체인 집강소 설치와 협약으로 민주정신을 면면히 이어온 민주정신이 바로 호남의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한 동학혁명군은 부패세력 척결, 반외세를 실현코자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을 외치며 일본군과 관군에 죽창을 들고 결사항전을 하면서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힘을 실어 동학혁명을 완수하고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황포장수 울고 간다’며 녹두장군을 중심으로 힘을 모은 것은 녹두장군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야간에 일본군 대포에 물을 부어 대포가 제대로 발포 할 수 없도록 하면서 저항을 했으나 혁명에 성공하지 못하고 정읍으로 피신을 하게 되고, 친구의 밀고로 관군에게 체포되기까지 김개남 장군은 전라감영의 중인의 밀고로 처형당하면서 혁명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아직도 그 불꽃은 꺼지지 않고 있다.

김개남 장군은 전주의 초록바위에서 참수, 서영도 장군과 체포된 동학혁명군 700여명은 총살형을 당하여 전주천에 몇 일간 핏물이 흘렀고 전라감영의 민간 가옥이 3분의 1이 없어졌다는 기록을 보면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대가가 엄청나게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록바위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당할 때 15세가 안 되어 1년간 전라감영 옥사에 가두었다가 15세가 되던 해에 초록바위의 전주천에 수장하여 순교한 성지이며 동학혁명군의 처형장이 되어 현재는 동서학의 성지인 것이다.

때문에 동학혁명정신으로 이어진 3.1독립선언,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 4.19학생의거, 박종철, 6.10 민주항쟁은 대한민국의 청년과 대학생들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정신으로 이어진 동학혁명정신은 반듯이 헌법전문에 명시될 것을 주장한 것이다. 

바라건 데 동학혁명 관련 단체들은 이 땅에 민주주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하다 희생된 숭고한 정신을 이어 갈수 있도록 기념일 제정에 양보와 배려, 당시의 정신을 지키며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동학혁명 기념일 재정에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대가를 바라고 동학혁명에 참여한 것은 아닐 것이나, 잘못 주장하여 숭고한 희생정신에 훼손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밝혀 두면서 동학혁명의 정신에 의한 전라감영 집강소 설치 일이 동학혁명일로 지정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찌됐든 이번 동학혁명정신이 헌법 전문에 실리기 위해선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다행히 유성엽 국회의원이 청와대와 국회 헌정특위에 동학혁명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킬 것을 공식 요청했다 하니 그 결과에 기대가 되고 있다. 30년 만에 개정되는 이번 개헌 과정에 우리 근대사의 위대한 출발점이 되는 동학혁명 정신이 반드시 포함돼야 함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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